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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법문] 마하반야바라밀 수행(2부) (1986년 7월 6일, 잠실법당)

2020/04/18
관리자 275



 

금주의 다짐

 
 "믿는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를 악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자. 그도 진리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결코 악인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에게 깃들어 있는 진리 광명이 늦게 나타나는 것 뿐이다. 그의 진실 면목이 불성인 것을 굳게 신뢰하자. 그리고 그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고 그의 성공과 행복을 기원하자.



 금주의 법문 

마하반야바라밀 수행(2부)
(1986년 7월 6잠실법당)


☞ 육성법문 들으러 가기 
『BTN 반야의 지혜로 세상을 밝히다 금하당 광덕스님, 방영일 : 2017.02.07』http://www.btn.co.kr/btntv/detail.asp?ls_StSbCode=CATPR_15&PID=P979&DPID=74950


  예전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월간 불광의 구도문답에도 썼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하고 일심 염송할 때 그 때는 어떻게 하느냐? 그 때는 부처님도 생각하지 마라. 부처님 은혜도 생각하지 마라. 부처님 공덕도 생각하지 마라. 내가 병 있다고 아프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직 마하반야바라밀 그것만 해라이거야. 그건 일심이라고 그럽니다. 일심, 일심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  부처님 은혜, 부처님의 위신력, 부처님의 한량없는 은덕을 생각하고 일심 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 우리는 그럽니다. 부처님의 은덕은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관하는 거야. 그리고 평소에 그러는 것이지만 반야바라밀을 염송할 때는 반야바라밀만 염송하라.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예요. 반야바라밀만 염송한다. 염송해 보니까 아마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일심으로 반야바라밀만 염한다.

  부처님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부처님 은덕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내가 병고가 있다든가 무슨 소원이 있다든가 뭐가 뭐다 엊저녁에 좋은 꿈을 꾸었다든가 하여튼 일체 생각을 싹 버려요. 싹 버리고 오직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그 일념뿐이여. 그것 일심 그것만 쥐어 가는 거여. 그렇게 하다보면 제각기 경계가 나와요. 불교 공부하는 데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 대문입니다.

 

  이 대문을 모르기 때문에 다들 헤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세계는 문이 없어요. 문이 없으니까 무한의 세계여. 무한의 세계이기 때문에 길도 없어요.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모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들 잘 묻습니다. 또 이 부분은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 가보지 않은 사람은 대답도 못해요.

 

  체험해 보고 가보고 부처님의 말씀, 조사님의 말씀을 챙겨 보고 그렇게 해서 선지식의 방망이를 맞든지 스스로 얼마간인지 제가 거기에 대해서 체득한 바가 있어야 명백한 답을 해요. 그렇지 않고는 말 못 해. 한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일심으로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는 일체 경계를 취하지 마라. 일체 경계를 취하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가라. 이 한마디를 드립니다.


  그리고 생각 마하반야바라밀 그 생각, 염불이면 염불 그 생각 그것만 잡고 한 가지만 하면 좋지만 이 생각 저 생각 일으키면 망념이 일어나는 거야. 거기에 산란심이 일어나고 나중에는 독어라고 그래가지고 거친 생각이 일어나는 독어라고 그러지요. 마침내는 산란심, 독어 다 그것이 공부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데에 빠지는 것이 맨 처음으로 오는 경계인데 절대 그건 경계이니까 거기 빠지지 마라. 마치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만 꼭 경에도 그 말씀이 있어요. 조사어록에도 그 말씀이 있어요. 엿을 물고 있는 것과 같다. 엿을 입에 넣고 있으니까 단물이 나오거든 그걸 입에다 넣고 녹여서 그것만 꼴깍 꼴깍 삼키고 있다. 고요하고 안락하니까 다 앉아 가지고 그 재미에 취해 있다 이거여. 그래가지고는 어둑해져요. 지혜가 나지 않아요. 그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서 말끔한 생각 반야바라밀이 항상 살아 있어야 해요. 그 성성(惺惺), 성성하다는 것은 말끔하다는 뜻이고 깨일 성자 적적(寂寂) 고요 적자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말끔한 게 항상 살아 있어야 해요. 맑고 고요하고 살아있어야 해요.


  소천 노화상께서는수정, 맑은 수정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맑고 고요한데 투명하게 아주 밝으란 말이야. 그것은 그런 경계를 지켜가자면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오직 염하는 방법 밖에 없고 염해 가되 어떤 고요한 경계가 오더라도 절대 빠지지 마라.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기쁨이 온다. 고요하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기쁜 생각이 확 일어난다. 그래서 인제 기쁨이 나서 웃음이 나온다든가 고요한데 빠지다 보면 그런 경계가 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 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와요. 이제까지 거친 구름과 안개 같은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 세계가 전부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맑고 맑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다 계속 하다 보면 그 거친 안개 같은 구름 같은 데서 있다가 차차 밝은 데로 조금 나타나진단 말이야.

 

  밝은 데로 나타나면 이제까지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밝은 힘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도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웃음이 나고 기쁨이 나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잠시 지나가는 현상이여. 그런 때라도 처음 한 것처럼 십년공부 도로 나무 아미타불이라고 말을 하듯이 십년 공부해서 도를 통했다 하더라도 도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나무 아미타불을 시작해라 이거야.

그런 경우를 당하더라도 그것도 경계니까 경계에 따라가지 말고 그냥 마하반야바라밀을 그냥 지어가라. 그래야 무한이라고 그러는 지혜, 무한이라고 그러는 일심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그게 기쁨도 있고 슬픔이 올 때도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그냥 연달아 와 가지고 웃다가 울다가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 잠시 일어나는 경계여. ‘누가 그것 보고 저 사람 어떻게 잘못 되지 않았나?’그것에 빠져서 그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 잘못 되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일심으로 그냥 가다보면 없어지는 거지. 저절로 슬그머니 없어져 버려요. 잠시 지나가는 안개여. 없는 거여. 그러니까 고요하다고 고요한데 빠져 있지도 말고, 그냥 기쁘다고 기쁜 일이 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속박된 관념 가운데 있다가 속박된 관념이라고 하는 대립 관념에서 벗어나서 통일된 일념에 가까이 오니까 속박에서 벗어나서 기쁜 생각이 나는 거여. 항상 기쁜 거여 그냥. 그런데 항상 기쁘다고 항상 싱글벙글 웃고 다닌다고 해서 불법이 다 된 게 아니다 이 말이여.


  역시 그 경계도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원래 마음 가운데에 마하반야바라밀 일념으로 순수하게 해 나가는 사람은 그런 것이 없이 다 지나가버려요. ‘왜 그런 것이 생기느냐, 왜 경계가 생기느냐, 예컨대 왜 보이지 않았던 무지개를 봤다든가, 태양을 봤다든가, 무슨 귀에 소리가 들렸다든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았다든가,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몰랐던 옛날 일을 알아졌다든가, 무슨 전생 일을 봤다든가, 누구 일을 미리 예견했다든가, 뭔지 하여튼 가지가지 경계가 벌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냐? 그 원인은 이 범상적일 때는 몰랐는데 왜 염불할 때 마음이 고요하고 맑게 염불할 때 알아졌으니 자기가 도가 얼마만큼 열린 게 아니야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왜 생겼느냐 하면은 고요하고 고요한 것 까지는 좋습니다. 우리는 산란심 가운데 있거든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나고 하는 이 산란심 가운데 있다가 산란심이 아닌 고요한 마음에 가까이 가는 것은 좋다고. 고요한 마음으로 가서 고요한 마음으로 자기를 끌고 갔던 그 말끔한 생각이, 말끔한 생각의 핵심이 흐렸기 때문에 그래요.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해서 산란한 생각이 없어지고 고요한데로 갔단 말이야. 고요한 데로 갔을 때 그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관하는 그것이 흐려져 버렸어. 놓쳐버렸어. 잊어 버렸어. 약해 버려졌어. 그리고 고요한데 자기도 모르게 푹 빠져있다 이 말이야. 그것다 경험이 있을 겁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래 가지고 아침부터 앉았든가, 초저녁에 앉아 가지고 새벽까지 앉았다든가, 어떻게 잠깐 앉아 있다 보니까 새벽이 되어 버렸단 말이야. 그 뭔가? 그렇다고 머리가 말끔한가? 말끔하지 않아. 그 사이 내 생각에는 금방 지나가 버린 것 같은데 맑지가 않을 때가 있어요. 혼혼상태에 빠진 거여.

 

  왜 혼혼 상태에 빠진 게 뭐냐? 마하반야바라밀로 말하면 마하반야바라밀의 그 성성한 생각을 들고 가는 것이 성성한 기운이 허약해서 그렇다 이거여. 성성한 것을 놓쳐버리면 그거 고요한데 빠져 들어가 버리면 경계가 벌어지는 거여. 고요한 게 깊으면 깊을수록 경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제 세상에 모르는 것을 알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남이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는 때도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무한이라고 그러는 진리세계에 가는 사람은 그 모두가 일체 경계이기 때문에 그 경계를 취하지 마라거듭 말씀드립니다. “일체 경계를 취하지 마라. 오직 마하반야바라밀만을 염해 가라.”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공부하는 가운데서 의심나시는 분들이 있거든 이 일체의 경계 보고 듣는 경계를 취하지 말라고 하는 이 법문과 일체법의 근원인 근본 진리인 일심이라고 그러는 이 진리, 이것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하는 것으로 알아서 그런 데 머물지 아니하고 오직 처음 공부한 것처럼 경건하고 간절한 자세를 가지고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염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불광 형제들은 스스로도 진실하게 하지만 하는 것만큼 딴 사람에게도 꼭 일러 주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수행하고, 이렇게 생활한다. 정말 자기가 한 것만큼 더 강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불광에서는 자랑스러울 만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게 많습니다. 왜냐하면 절에 많이 다닌다 하는 분들을 봐도 일 년에 몇 번 가시는 분들입니다.

 

  또 몇 번 안 가시고 자주 가신다 하면서도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여러 지식을 있어도 실지 생활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내가 지혜의 문을 열어 갈 것인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내 소망을 밝게 성취해 갈 것인가, 이 참으로 살아가는데 진리의 활용의 길을 아시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광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 만큼 남에게 알려주는 무기, 가르쳐 주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잘 가르쳐 드려라.

 

  다들 아는바와 같이 정리해 보면 우리 불광의 수행이 뭡니까? 제일은 금강경읽고, 반야심경읽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것 아닙니까? 지장경을 읽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든지, 지장보살을 부르든지, 약사여래불을 부르든지, 아미타불을 부르든지 다 좋지만 근본적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알아야 해. 그래서 금강경읽고, 반야심경읽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누구든지 그건 다 하지요. 그리고 마음에서 관한다. 부처님의 은혜, 부처님의 위신력, 부처님의 크신 공덕이 내 생명에 우선 넘쳐 나고 있는 것을 관한다. 우리 가족, 우리 형제, 우리 이웃 모두에게 넘쳐나고 있는 것을 관한다.


  부처님의 은혜, 부처님의 광명 그것을 관하는 것 이게 아마 우리 불광 형제들의 수행의 내면의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그 다음 그렇게 되니까 감사한 생각이 나는 것이지요. 금강경읽고, 반야심경읽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그리고 부처님의 광명이 내 생명, 내 집안에, 내 사업에, 내가 가는 길에 충만한 것을 항상 생각하니까 감사한 생각에 이르는 거여. 충만해 있고 감사하고 마음이 이렇게 바뀌기 때문에 운명이 바뀌는 거여. 일이 바뀌고 잘 되는 거여.

 

  형제들 아시다시피 밖에 뭐가 있어 되는 게 아니라 진리는 안에 있는 것입니다. 안에 진리가 바뀌기 때문에 밖이 바뀌는 거여. 그래서 불광 식구들이 이렇게 염송하고, 이렇게 부처님을 관하고, 그 관한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서 감사하기 때문에 기도 성취가 되는 거여.

 

  그 다음에는 세 번째로 우리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움을 버리는 것이지요. 불광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미워하지 않는다. 나를 아무리 해치고 나한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절대로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아니한다, 대립하지 아니한다, 증오하지 아니한다 그런 것들이지요.

 

  마음의 감정, 마음의 파동, 마음의 거친 것을 다 쏟아 버린다. 부처님한테 절할 때 확 쏟아 버려. 확 비워버려. 마음을 비우는 거지요. 불광수행에 중요한 것을 따진다면 그 세 번째일 거예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미움과 원망과 대립감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간에 미움과 원망이라고 그러는 것은 바깥에서 누가 도발했다 하더라도 내 가슴에 가지고 있는 응어리입니다. 내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검은 덩어리입니다.

 

  내 가슴에 응어리 검은 덩어리를 내 가슴에 가지고 있으면, 내 가슴에 가운데 차디찬 얼음 덩어리를 내가 가지고 있으면 누가 불행해질 것이냐 이 말이여.

내 가슴의 등불을 꺼버렸을 때 누구 앞길이 어두워질 거냐 말이여. 남이 잘했다 어떻다 하든지 말든지 내가 다행스럽고, 내가 행복해 지고, 내가 기뻐지고 싶거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라. 내 마음을 평화스럽게 하라.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내 마음을 밝게 하라. 내 마음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라.

그러기 때문에 반야심경에 분명히 일체 경계가 ()’라고 했어.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

 

  나는 왜 있다고 생각하고 그거에 매달려 가지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요놈하고 분심을 가지고, 참지 못하고, 눈물이 막 쏟아지고, 가슴이 뛰느냐 말이야. 없는데. 그래가지고 내가 행복해지는가? 행복하고 싶거든 부처님 말씀을 믿고 그리고 행복하고 싶거든 내 마음에 있는,가슴에 있는 것을 비워버려야 해. 우리 불광이 그것 아닙니까?

 

  불광 수행하는 사람들 첫째는 염송이고, 두 번째는 부처님의 무한공덕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삼독심을 버리는 거예요. 미움과 대립을 싹 쏟아버리는 거예요. 이유가 없어요. 행복해 지기 위해서, 내가 밝기 위해서, 내 집안이 밝기 위해서, 내 나라가 밝기 위해서, 내가 밝고 내가 행복해져야 내 집안이 행복해지는 거여. 내가 불행해 봐. 내가 어두워 봐. 내가 거칠어봐. 나만 불행해 지는 게 아니라 내 집안이 한꺼번에 불행해지는 거야. 우리 불광 세 번째가 그거지요.


  네 번째는 다들 아는바와 같이 반야심경을 외고 그 다음 보현행원품항상 배우지 않습니까? 보현행자의 서원을 우리가 항상 읽고 있지 않습니까? 참 부끄럽습니다만 보현행자의 서원을 우리 형제들이 읽고 있는 것을 보면 제 생각에 송구한 생각이 있습니다. 보현행자의 서원은 저의 수행을 위한 저의 다짐입니다. 저의 서원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형제들이 함께 읽어 주시고 읽게 권하기도 한 것이 제가 잘못한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고 송구한 생각이 많습니다. 어쨌든 솔직한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부처님 앞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이렇게 예경하라. 모든 부처님을 이렇게 예경하라.”부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경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하고 우리는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보현행원에서 하고 있지요. 행원을 행합니다. 거기서 항상 존경하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모든 사람이 부처님 공덕을 갖춘 것을 존경하고 찬탄하고 그리고 받들어 섬기고 우리 보현행원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 보현행원은 불광 불자는 혼자도 행하고, 법등으로도 행하고, 어디 가서도 행하고, 집에서도 행하고 하는 그런 보현행자가 되는 거여.

 

  우리 불광은 아마 수행의 요령을 말하라고 그러면 아마 기본적으로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염송이다. 독경하고 염송하는 것이다. 둘째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은혜, 부처님의 위신력 그 공덕이 내게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믿고, 지금 여기 있는 거여. 믿고 감사한다. 절대 미워하고 대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을 공경하고 찬탄하고 받들어 섬깁니다. 이게 아마 우리 불광수행의 골격일 겁니다.

 

  전법은 사실 남을 도와주는 게 전법입니다. 우리 불광이 요새 남 도와주는데 열을 내는 것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법이여. 무조건 남 도와주는 거여. 그게 전법인데 그렇게 전법함으로써 불법광명이 영원해서 우리 모두가 불법광명 가운데 기쁨과 성취가 이루어지고, 우리 국토 우리 국가가 정말 바라밀 국가가 되도록 정불 국가가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와 역사가 진실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언지 몰라 그러면 그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당탕퉁탕하고 욕심을 협동했다가 서로 흩어지고, 서로 대립하고, 서로 묶여져 가지고, 단체적인 집단행동으로 나오고 그래서 그저 왈카당 덜커덩하는 고민의 세계가 나오는 거지요. 근데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해 주셨어. 그건 이미 우리가 배운바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무엇이다. 근본적인 존재, 궁극적인 존재가 무엇이다하는 것을 설명해 주었어요. 우리 형제들 불광에서 이건 배웠다 그럴 겁니다만 사실 값비싼 것을 배운 것입니다.


  오시기도 힘들었고 공부하기도 어렵지만 사실 불법의 핵심이고 불법의 핵심이라는 말은 진리 가운데 최상의 진리여. 이걸 알면 세상만사 역사는 이렇게 나가야 한다. 국가는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인간은 이렇게 나가야 한다. 사회는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이다. 삶의 보람은 뭐다하는 근본 가르침을 여기 다 나와 버려요.


  제가 불법을 만난 것은 불법 찾으러 절에 온 게 아니고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이게 절에 들어 왔는데 와 가지고는 엉뚱한 보배 정말 몇 생을 헤매서도 얻을 수 없는 불법이라는 것을 제가 만났습니다. 요행이라고 그러면 요행이지요. 그런데 사실 불법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제 나이가 24살입니다만 그때까지만 해도무엇이 진실인가?’이 한 물건을 위해서 헤매고 헤맸습니다. 아마 형제 여러분들도 젊은 시절에 그런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해답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명쾌하게 이에 대한 대답을 해 주고 있어요. 해 주고 그것을 해 주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바로 우리 모든 사람 가슴 속에 다 직접 넣어 주시고 이거 봐라하고 열어 보였어요. 근데 이렇게 보면 어떤 인연이든지 불법 만난 것, 어떤 인연이든지 불법인연을 심어준다는 것 이것은 참 귀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반야바라밀에서는 이 때 묻은 거, 악 반야바라밀에서는 ()’라고 그랬어. ()! 때를 닦으려 애쓰지 말라고. 때는 부처님이 ()’라고 없다고 그랬어. , (). 우리의 생각 번뇌망상 그것이 그렇게 가지고 있는 거 뿐이여. 실로는 없는 거여. 이 세상이 캄캄하다고 그래요. 이 세상이 캄캄하다고. 이 캄캄한 거 어떻게 삽으로 떠낼까, 바가지로 퍼낼까 아니면 빗자루로 쓸어낼까 어둠이 쓸어지지 않습니다. 번뇌망상 닦아야 한다고 그럽니다. 쓸어내야 한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번뇌망상 어둠이라고 그러는 것이 적극적인 존재가 아닌 것처럼 적극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어둠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밝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밝음의 부재 밝음의 부재가 어둠이여. 그렇기 때문에 어둠을 없애는 방법은 어둠을 한 바가지 두 바가지 퍼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불을 켜버리면 어둠이 없어지는 거여. 불을 밝히면 없어지는 거여.

 

  그런데 우리 번뇌도 우리의 최승의 몸, 이 아름다운 몸, 공덕의 몸, 지혜의 몸, 훌륭한 이 몸을 부처님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리고 있는 것은 안개와 같은 번뇌 망상이 가리고 있다 이거여.

 

  번뇌망상을 어떻게 제해 없애느냐? 한 바가지, 두 바가지 퍼내거나 쓰러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무(). 그렇게 알고 내게 있는 최승의 몸, 진실의 몸, 부처님 공덕 이걸 쓰라는 거여이거’. 빛을 밝히면 등불을 밝히면 저절로 어둠이 없어지는 거여. 번뇌망상을 끊으려고 안하더라도 내가 있는 부처님 공덕을 믿고 그것을 행하면 번뇌망상은 슬그머니 없어지는 거여.

 

  번뇌망상을 없애는 법, 불광은 그게 다릅니다. 불광법회에 와서는 번뇌망상을 없애는 방법으로써 번뇌망상 하나하나를 떼어내고, 쓸어내고, 닦아 내려고 그러지 아니하고, 내게 와 있는 밝은 광명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쓰고 행하는 거여. 밝은 등불을 확 든다구. 밝은 등불을 확 드니까 내가 밝아지고, 우리 집안이 밝아지고, 내가 가는 곳 마다 밝아지고 우리가 있는 세계가 밝아지는 거여.

 

  우리들이 반야바라밀 수행을 해서 우리들 자신 가운데 깃들어 있는 부처님의 무한공덕장 세계 이것을 믿고 이것을 행하는 사람, 이 사람은 하늘과 땅과 일체신이 우러러 본다. 부처님이 증명하신 것을 생각해서 우리 진실수행을 더욱 게을리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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