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는

신행 공동체 불광

함께하는불광

불광소식

불기 2563년 8월 25일 네번째 일요법회

2019/08/28
관리자 416

불기 2563825일 네번째 일요법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도 어느덧 마지막 네번째 일요법회가 열렸습니다.

오늘은 남성합창단이 합창을 하는 날

인원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합창단 인원은 적어도 우렁찬 목소리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광덕 큰스님의 영상 법문에 앞서 회주 스님께서 요즘 일부 단톡방에 올라온 내용에 대해 해명을 하셨습니다.


 

회주 스님 해명내용

카톡방에 비방하는 글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어 왔지만 오늘은 해명을 해야 될 것 같아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함안군에 있는 봉불사에 상좌 없이 건당상좌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통도사 스님이고 어렸을 때부터 아는 스님인데 건당 상좌를 만들었습니다

10여년 전에 문도들에게 인사도 시켰습니다.

2004년 소임을 끝내고 떠났는데 2007년 쯤에 절을 이어서 하려면 상좌한테 물려 주어야 되겠다 싶어 봉불사 대웅전과 토지는 대각회에 이전 등기했고 이 상좌가 대를 이어 운영하라는 의미로 2007 4월 나머지를 등기 이전 해주었습니다.

상좌가 갖고 있던 자연사던, 사고사던 열반하면 조계종으로 자동 귀속된다는 법규가 나중에 약 10년 전 쯤 생겼습니다.

상좌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어서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저에게 다시 돌려 주겠다고 해서 상좌 나이가 64세인데 너보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그래도 내가 먼저 죽는다 한번 준 것이니 네가 갖는 것이 맞다고 거절을 했더니 그러면 공양주 보살을 주겠다고 해서 네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상좌가 공양주 보살을 주었습니다.

시골에서 23~4년을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데리고 있었습니다. 다 갚을 길도 없으니 그러면 네가 그걸 주고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라 네가 주고 싶으면그렇게 얘기를 한 것이며 참고로 상좌와 공양주는 친형제지간입니다.

공양주에게 준 싯점이 작년 3월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양주 앞으로 이전했습니다.

보통 사이가 아니라서 부동산을 준 것이라고 해서 밝혀 드리는 것이고 같이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하는데 여러분이 판단하시고

 

주소가 다르다 고 하는데 이 부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신 주소, 구 주소가 있는 모양인데 그 것 때문에 주소가 다르게 나오는지 몰라도 한 동사무소에 한 주소로 신고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마을사람들한테 소문을 들으니 나쁜 사람이다 하더라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봉불사를 들어 가려면 약 3Km를 들어가야 하는데 진입로 3Km를 내는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이 관계로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몇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게 좋게 얘기할 리가 없겠죠?

 

 봉불사 이름을 갖고도 말하는 분이 있는데 봉불사는 내가 짓고 내가 이름을 졌습니다 그걸 가지고 나쁘게 보던 좋게 보던 여러분들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앞으로도 불광사를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이어서 광덕 큰스님의 영상법문이 시작 되었습니다


 

광덕 큰스님 영상 법문 요지

 

요즘 공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번뇌라는 것도 공해와 같은 먼지나 소음이나 생활주변을 위협하는 독소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데 어떤 공해보다도 이 번뇌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영원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공해입니다.

중생의 심신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어지럽히며 더럽히는 정신 작용, 이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고 그릇된 마음을 갖고, 그릇된 행을 하고, 그릇된 과보를 받습니다.

과보가 불행과 고통 죽음입니다.

() () ()의 三道라고 그럽니다만 미혹과 미혹된 행위와 그 결과를 받는 중심점이 번뇌이고 윤회의 근본 바탕에는 번뇌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를 끊어서 번뇌의 언덕에서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됩니다.

번뇌가 무엇이냐?  자기가 갖고 있는 본래의 마음 正念을 잃어버렸을 때 생기는 자기 마음의 혼란 상태가 번뇌입니다.

번뇌를 끊는 방법, 번뇌가 없는 자리 그것이 正念입니다.

경에는 다섯 가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번뇌가 없는 청정지, 이것이 원래의 땅입니다.  혼란된 바도 없고 때 묻은 바도 없고, 물든 바도 없는 그런 땅이 원래로 있다 하는 것을 먼저 머리에 두어야겠습니다.

그것은 불법을 배우는 사람만이 아는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대개는 번뇌 속에 살면서도 번뇌를 모르고 번뇌를 벗어나서 번뇌가 없는 땅에 있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본래 번뇌가 없는 청정한 자리를 찾아 드는 것이 법을 깨쳤다고 하는 것이고 해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방법 해탈의 하나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번뇌가 없는 지대에 뛰어 들어가는 입니다.  번뇌가 없는 지대라는 것은 본래의 마음, 원래가 끊긴 자리, 이 자리에 들어가면 바로 열반을 얻는 것이고 또 일상생활 가운데서 번뇌에 살되 念을 맑히든지 아니면 번뇌가 없는 것으로 알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경에는 다섯 가지 있는데 첫째가 사물을 바르고 보고 원인과 결과를 잘 살펴라, 괴로움의 뿌리는 마음에 바른 도리를 어기어 생기는 번뇌이므로 이 번뇌가 없으면 맑은 경계가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라.  사물을 잘못 보아 인과를 무시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 번뇌가 일고 괴로움을 만난다.

일체의 막힘 없는 진리와 더불어 진리 자체 중심이 우리의 본 성품입니다.

거기에는 생각이 이를 수도 없고 형상도 끊긴 절대의 완전무결한 상태입니다.

어려움이나 고난이나 불행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이 마음이 움직인 결과이고 번뇌가 일어난 결과입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원인이고 괴로움과 불행은 그 결과 과실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났다.  오늘 이 시대에 같이 태어났다는 이 모두가 공통적인 충보라고하는데 동업을 지은 공통성이 있어서 같은 시대에 같은 국토에 같은 백성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여튼 지금 받고 있는 것이 좋던, 나쁘던 모두 자기가 지은 것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남이 지은 것이다.  원인이 따로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운 관찰이 되지 못하고 인과를 모르는 것입니다.

별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別報는 같은 인간이면서도 같은 한국 사람이면서도 제각기 모양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생활조건이 다르고 출생이 다른 별개의 과보를 받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총보를 같이 가지면서 별보를 각자 지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지어 준 것이 아니고 자기가 지은 것이다. 남이 지었다고 생각할 때 자기의 현재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기회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대개 우리들은 각자 하기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만들어 갑니다.  자기도 만들어 가고 환경도 만들어 갑니다.  자기가 지은대로 받는 것, 나쁜 짓 해서 나쁜 과보를 받는다든지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과보를 받든지 이 모두가 순현업(順現業), 순현보(順現報)라고 합니다.

또 어떤 것은 금방 짓고 금방 받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을 바꿔서 다음 생에 가서 받는 것을 順生報라고 합니다.

금생에는 아무 원인이 없는데 내가 지은 것이 아닌 것 같아도 전생에 지은 것이 있습니다.

미국사람인 에드가 케이시에 의해 널리 알려진 전생투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또 연령 역행이라고 해서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연령을 퇴행시키기도 합니다.

최면을 걸어 내가 100살이라고 하면 5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다시 100년 전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태어나기 5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 과거 생을 탐색하는 방법으로 근래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투시 사례를 보면 어떤 대학 교수가 눈이 나빠 실명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과거 생을 투시해보니 약 천년전 페르시아 시대에 야만족으로 태어났는데 전쟁 포로들의 눈을 멀게 하는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고 그 과보가 금생에 내려와 눈이 안 보이는 결과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폭음폭식을 했던 전생과거가 밝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도 위가 약해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아 결국 전생투시를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던 이 사람은 음식이 맛있다고 마구 폭식을 했고 그 과보로 금생에는 잘 먹지 못하는 결과가 투시되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과보는 자기가 금방 지어서 내 환경을 내가 만들기도 하고 자기를 만들기도 할 뿐 아니라 내가 받고 있는 것은 전생에 지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지금 지은 것이 그 다음 생에 받는 것도 있고, 그 다음 삼생 사생 몇생 이후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받는 것이 전생에 지은 것도 있고 그 보다 더 먼 생에 지은 것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남의 잘못이다. 남 때문에 그렇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과를 살피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과거가 있더라도 오늘 새롭게 마음을 먹고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새롭게 행동을 할 때 자기를 만들어 갑니다.


모든 것이 나의 마음 가운데에 있다 근원은 내 마음의 번뇌에 있다.  그래서 번뇌가 없는 도리 여기에 이르렀을 때 죽음 없는 땅, 불행이 없는 땅, 고난이 없는 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그 밝은 본성의 심지(心地)를 여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철저하게 우리의 주체적인 행동을 강조하십니다.  바라드바자라는 바라문과 문답한 대목이 경에 나오는데 그 사람은 바라문이었으므로 자기 집에서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났을 때 마침 부처님게서 사위성에 나갔다가 바라드바자네 집 가까이 갔더니 그가 문으로 내다 보았던 모양입니다.

바라문교를 믿지 않는다고 천시하는 말을 했습니다.  머리 깎은 사람이 오는 군, 오지 마라 그 자리 서라 이 천한 사람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무엇이 천한 것이고 무엇이 천한 사람을 만드는 원인인지 아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모르겠으니 알면 가르쳐 달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천인경(賤人經)이라고 하는 경입니다.  행위가 자기를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숫타니파파 136번 경문인데 출생으로 천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출생으로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써 업으로써 천인도 되고 업으로써 바라문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가장 상류계급이 바라문인데 바라문은 저절로 태어나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된다.  행동에 따라서 바라문도 되고 크샤트리아도 되고 수드라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한 것과 귀한 것은 행위로써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바르게 믿고 바른 행을 항상 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고 항상 그렇게 닦아가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