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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6월 30일 다섯번째 일요법회

2019/07/01
관리자 260

불기 2563630일 다섯번째 일요법회


 

어느덧 1년의 절반이 꽉 차는 6월의 마지막 날 법회가 열렸습니다.

다섯번째 일요법회는 문화법회로 해 왔었지만 그 동안 정상적으로 법회가 열리지 못한 여파로 오늘도 광덕 큰스님 영상법문과 마하보디 합창단이 찬불가 3곡을 부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었습니다.

 

광덕 큰스님의 설법 요지

  

존재하는 것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우주가 없어진 후까지라도 그것을 겁전겁후(劫前劫後)란 용어를 씁니다만 겁이라는 시간세계, 공간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생기기 이전과 생겨서 오래 오래 머물다가 없어지는 동안과 없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후까지라도 그 결정적인 모두를 부처님은 아십니다.

진리가 궁극적인 존재인 까닭에 궁극적인 실존은 진리인 까닭에 진리 자체이신 부처님은 그 모두를 아십니다.


중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모든 도리를 다 아시고 치우친 양변을 떠나 중도에 계십니다.

양변이라면 있고 없는 상대적인 것을 말합니다.

두 쪽입니다.  어둡고 밝은것, 생과사, 좋고 나쁘고 밉고 곱고, 모든 상대적인 것을 양변이라고 합니다.

고행과 쾌락도 양변입니다.

부처님은 이 고행과 쾌락의 양극단을 여의고 중도를 깨달으셨습니다.

부처님이 중도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이 모두를 지워 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모두를 초월한 근원적인 자리 거기에 머무신다는 뜻입니다.

미 모두를 초월하는 근원적인 자리에 대해 참으로 있는 실재(實在)라는 용어를 씁니다.

양쪽을 여의는 것 예컨대 조용하다. 시끄럽다. 

이 두 가지를 여의는 것은 일심(一心)을 말합니다.

중도는 바로 이 일심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고 일심을 통해서 양변이 좋다. 나쁘다. 밉다. 곱다. 생이다. 사다 하는 그 두 조각

이 상대적인 세간을 초월하고 거기서 벗어나서 그 모두를 함께 싸고 넘어선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도의 자리이며 바로 근원적인 진리의 자리입니다.

이 중도가 불교의 근본적인 입장입니다.

부처님은 이 중도에 머무십니다.

여러 부처님이 있어서 이 부처님은 무엇을 좋아하시고 저 부처님은 무엇을 싫어 하신다고 하지만 부처님 한 부처님이십니다.

비록 명호나 설하신 법문 우리가 이해하는 바가 다르다 하더라도 하나의 진리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 부처님을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법신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입니다.  하지만 형체로 나타나시면 아미타불이고 석가모니불이지만 근본법 자체는 비로자나불입니다.

이렇게 교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표현할 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도리를 일러주신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오직 하나의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며 비로자나불이 바로 석가모니불이고 부처님이 법신불이고 부처님이 일체불이라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하보디합창단과 수명 지휘자선생

거의 점의 수준으로만 나왔던 합창단의 예쁜 얼굴들을 클로즈업 ㅎ



구호가 사라지고 신도들로 채워지고 있는 로비


금강산도 식후경 붐비는 공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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