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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소식

불기 2562년 3월 호법법회

2018/03/09
불광미디어팀 관리자 381


 

3월 호법법문



 

 

내 생명 부처님 부처님무량공덕생명임을 믿고 확인하는 혜담스님의 마하반야바라밀대 광명의 법문을 듣기위해 오늘도 많은 불광형제들이 불광사 보광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어제는 경칩이었고 최근 자주 내리는 봄비로 대지는 뭇 생명들의 봄맞이를 때 맞추어 줍니다. 석촌호수의 얼음도 다 녹았습니다.


 

 형제여러분 감사합니다.

금년1월 달이 너무 추워서 지리산 개구리들이 예년보다 25일 늦게 알을 낳았다합니다.

이제 꽃피는 3월이 왔습니다. 3월에 호법법문을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지난달 호법발원하신 19형제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시며 혜담스님께서 오늘의 법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절 집안에 들어와서 부처님께 의지한지가 올해 48년이 되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칠순이 되었습니다.

칠순을 기념해서 제 스스로가 후배스님들께 도움이 되기 위해 48년 동안수행하고 느낀 것을 7~8년 전부터 원고를 모아서 금년1월에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회주스님께서 고희기념으로 책을 일괄구매해서 법보시를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책 129~230쪽을 찬찬히 읽으면서 설명을 드리는 것으로 법문을 대신할까합니다.




 

   

<법문요약>

*법당의 메아리*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1] “전등록3권에는 달마조사의 법을 이은 2조 혜가스님이 깨달음을 얻는 계기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이미 40고개를 넘었고, 내외의 서적을 모두 읽고 배워서 알 것은 모두 배웠다. 사색이나 실천도 그가 할 수 있는 한은 모두 다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번뇌 즉 보리”)라는 유마경의 말이나 미혹한 마음밖에 따로 깨달음은 없는 것,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마음을 파악할 수 없다[금강경]삼세심불가득(三世心佛可得)의 가르침도 혜가스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는 도리나 방법이 아니라, “참으로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 것바로 그것이다.

삼세심불가득의 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혜가스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자신이 안고 있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었다. 마침내 혜가스님은 달마조사를 찾아 뵙고 지금까지도 선문(禪門)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문답을 한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가지고 오라. 편안하게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네 마음을 이미 편안케 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말자 혜가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까지 안고 있는 모든 고민이 사라졌어요. 이것이 중국선종이 생겨나게된 근본이유입니다.

여기서 달마는 혜가스님의 불안을 정통으로 제거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불편한 마음을 한마디 말로 본래의 깨달음을 얻었다.


'미혹한 마음 밖에 따로 깨달음은 없는것' 즉 '본래성불'이다.

이것은 반야경에서 나오는 말이다.

우리들의 생명이 본래 '마하반야바라밀'이다.

이게 금강경의 사상이다.

덕산스님이라는 유명한 강사가 있었다.

스님이 장안에서 법을 펴고 있었는데 듣자하니 쓰찬성에 스님들이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다. 즉심성불이라 마음을 깨달아서 부처가 된다? 내가 당장 이 스님들을 개조해야겠다고 길을 떠납니다.

어느날 큰 산을 넘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나서

금강경 제18분의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과거의 마음은 지나갔고,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고, 현재라는 것은 찰나찰나 지나갑니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저의 떡을 사서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

평생을 금강경을 공부한 금강경의 대가 덕산스님이 그말을 듣자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 노파가 스님께 "용담원"이라는 절의 숭신스님께 가서 참선공부를 할것을 권합니다. 스님은 크게 챙피를 당하고 점심을 쫄쫄굶으면서 용담원에가서 숭신 큰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게됩니다. 마침내 '덕산선감'이라는 유명한 선승이 탄생하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 각자께서 그 노파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우리 불광법회는 금강경을 항상 중요한 경으로  읽고 수행합니다.

저도 항상 법회에서 반야경을 법문합니다.

'과거심 미래심 현재심'어디에다 점을 찍겠습니까? 한말씀 일러 보십시요. 아시겠습니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선사들을 만났을 때 그 선사가 어떻게 대답했는가?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일 대중께서 저에게 '만약 스님께서 그 노파에게 그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칠칠이 사십구요, 구구는 팔십일이다.' 그러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게 대답입니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이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2] 달마스님은 혜가스님의 불안을 정통으로 제거했다.

불편한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조사의 한마디 말로 혜가 스님은 본래의 편안함을 회복했다. 본래의 편안함은, 이제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와 관계가 없으며, 잃어버림도 없고 회복됨도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달마조사의 대답이 단순한 돈지(頓智)나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궤변, 또는 재치가 있는 카운슬링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바로 직하에서 법문을 해결해버렸다.

 

 

여기에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조사가 중국불교에 기여한 가장 크고 특색이 있는 공헌은 이 문답에 함축되어 있다. 혜가스님이 조사에게서 구한 것은 단순히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이나 그 원리가 아니라, 현재의 자신의 마음을 단번에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조사는 확실히 혜가스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조사는 단순한 방편이나 일시적인 위안이 아니라, 가장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상대의 마음 자체를 적나라하게 내보이게 했다.

그런데 그 뿌리를 찾아보면 원래는 반야바라밀, 참성품밖에 다른 것은 없다.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원래 죄인은 없다. 누구든지 때 묻을 수 없는 진실청정 그것이 본래생명이다. 그래서 무슨 잘못된 허물이 있으면 염불이나 기도를 한다. 이런 수행을 하다보면 잘못된 것이 밖으로 다 들어난다. 마음이 맑아지기 때문에 맑지 않은 상태에서 있던 잘못한 것이 들어난다. 무엇이라고 변명하지 말고 잘못한 것을 솔직히 다 인정하고 그 다음에 참회한다. 그것이 참된 참회라고 말할 수 있다.

참회멸죄의 발상은 죄로 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의 죄를 덜어주고 해방시켜 주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상대를 죄에 빠뜨리는 속임수라고 유마거사는 가르쳤다.

 

*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인간의 무죄선언(無罪宣言)

[1] 혜가스님의 법을 이은 3조 승찬스님은 중풍에 걸려있었다. 당시에는 전생에 지은 죄의 과보라고 보았다. 스스로 죄를 참회하는 것 말고는 달리 중풍을 면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날 나이가 40쯤 되어 보이는 한 거사가 혜가스님을 찾아와서 절을 하고 여쭈었다.

 

화상이시여, 저는 중풍에 걸려있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참회시켜 주십시오.”

죄를 갖고 오라, 그대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대의 죄를 참회시켜 주었다. 앞으로 불..승에 의지하도록 하라.”

이제 화상을 뵙고 승보는 알았지만, 불법이란 무엇입니까?”

그대의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 승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저의 마음이 그러하듯이 부처와 법도 둘이 아닙니다.”

 

중풍은 불치병으로 당시에는 전생에 지은 죄의 과보라고 보았고, 스스로 죄를 참회하는 것 말고 달리 중풍을 면할 길은 없었다. 혜가스님은 그러한 참회멸죄의 발상을 면전에서 묵살한다. 인간의 무죄선언(無罪宣言)이다. 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경계에 빠져들어 간 상태이다. 그것을 죄라고 하면 미혹한 사람들은 다 죄가 있다.”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체가 모두 한 몸이고 모두가 더불어 하나인 진리체인데도 불구하고 진리체임을 잊어버리고 모두가 한몸, 같은 하나의 진리임을 알지 못하고 경계에 대해서 대립상을 일으키고 원망하고 다투고 해치고 거친 마음을 갖는 것들은 전부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달마조사 당시의 수계의 근거가 되었던 <관보현경(觀普賢經)>은 법화3부경이라 불리는 경전가운데 하나인데, 거기에는 참회멸죄의 도리를 이렇게 분명히 하고 있다.

 

일체의 업장해(業障海)는 모두 망상으로부터 생긴다. 만약 참회하고자 하면 단좌(端坐)하여 실상을 염하라.”

 

지금까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았던 다생의 업장은 모두 자신의 미망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업장의 바다란 결국 그곳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망상이란 자신을 잃는 것이며, 근본무명이며, 자신의 우치이다. 단좌는 좌선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번뇌를 가라앉히기 위한 좌선이 아니라, 번뇌가 불생(不生)임을 아는 고차원적인 명상의 실천이다. 이 경전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릇 죄업의 큰 바다도 모두 그대의 일시적인 생각이 낳은 무상한 것에 불과하다. ‘죄업을 멸하고자 하면 자세를 바로 하여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참회라고 부를 수 있다. 세 가지 근본번뇌, 대상을 쫒아가는 망상, 대소의 의식분별이 모두 제거된다.

부처를 관찰하여 마음의 통일을 지속하면 자신은 홀연히 청정하게 되고 대상을 생각함도 없다.



[대품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를 부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라고 무엇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부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이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부처를 구하고 의지하고 발원을합니다. 외부에 있는 부처님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바로 내마음이 부처인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참회라는 것은 내마음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 이것이 근본이에요.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착안해야 그때 "번뇌즉 보리"가 나옵니다. 근본은 내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것에 눈을 떠야합니다.

이거에 대해서 오늘 법회에서 나누어드리는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이 책을 잘 읽어보면 깨달음이란 어떤것이고,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것이고, 무슨일이 나타나고, 마침내 그 마음이 어떻게 되는 것이고,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까

잘 읽어보고 큰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이기회에 '내 마음이 본래부처이지 따로 부처가 있는것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깨닫게 알려주신 최초의 어른 석가모니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들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기해서 참회가 무엇이고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그 사실에 눈을 떠서 우리모두가 금년한해 오늘 봄날처럼 그런 좋은날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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