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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소식

불기 2561년 11월 넷째주 (11/26) 일요법회

2017/11/27
불광미디어팀 관리자 213


 


금주의 법어--대승의 바른 종지(宗旨)인 반야바라밀

금주의 법사--불광법회 선덕 혜담 스님


겨울 채비로 바쁜 중에도 내 생명에 깃든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을 잊지 않기 위해 법회에 동참하시는 바라밀행자님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곳곳에서 봉사하시는 보현행자님들 덕으로 오늘도 부처님께 예경 찬탄 공양하는 불광법회는 여법하게 진행됩니다. 선덕 혜담 스님께서 감기에 걸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모습이 조금 힘들어 보이셨지만 열정을 가지고 반야바라밀 법문을 열어 가십니다.

 

『보현행자의 서원』--「예경분」

부처님께 예경하겠습니다. 일체 세계 일체 국토에 계시는 미진수 부처님께 예경하겠습니다. 혹은 보살신으로 나투시고, 혹은 부모님으로 나투시고. 혹은 형제나 착한 이웃으로 나투시고, 혹은 거칠은 이웃이나 대립하는 이웃으로 나타나시는 자비하신 부처님께 빠짐없이 예경하겠습니다. ~~~

 


부처님 양 옆으로 설치된 스크린,  마하반야의 노래는 이제 2절을 부릅니다. 

 

 

법문내용

예년보다 한 달 정도 추위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 함께 법회를 보게 되어 고맙습니다. 불교라는 말에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사람을 부처 되게 하는 것, 성불에 있는데 이것은 대승불교에서 형성된 사상입니다. 조금 전에 읽은 「예경분」에서도 수많은 부처님, 제불보살님께 예경한다고 했지요.

 

부처님이 계시던 당시에 번뇌를 없애기 위해 말씀하신 내용을 적어놓은 『아함경』의 수많은 법문을 횡설수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내용도 모르면서 하는 말을 횡설수설이라고 알고 있지만 횡설수설은 부처님께서 횡으로 혹은 수직으로 말씀하신 팔만사천 법문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부파불교 이후 수행자 혹은 불자 자신만의 성불에 관심을 두고 몰두하던 것을 비하하여 소승이라 일컫고 부처님 열반에 드시고 250년에서 300년 뒤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마하야나, 대승이란 말은 『반야경』 중의 하나인 『금강경』의 제3분 대승정종분이란 것에서 시작됩니다. 대승정종이란 가장 위대한 가르침 중 으뜸이 되는 취지와 원리입니다. 한량없는 중생을 멸도하나 실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다 하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60명의 제자에게 한 전도선언에서는 속박에서 벗어났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번뇌가 없도록 전도하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대승에서 멸도한 중생이 없다고 하는 것에서 불교가 어려워집니다. 멸도한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상을 짓게 되는 겁니다.

 

『화엄경』과 『법화경』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는 동시에 유정이든 무정이든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성불했다고 합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은 2600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불광형제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은 모든 중생이 공덕생명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고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앞니에 금이 갔다고 하는 데서 저는 조주스님의 판치생모라는 화두가 떠올랐습니다. 여하시 조사서래의, 어떤 것이 달마조사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 하는 질문에 판치생모, 앞니에 털이 났다. 혹은 앞니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말로 개뿔이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거나 비난할 때 쓰는 말인데 저는 무슨 뜻인가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없다는 뜻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광법회에는 오신 지 얼마 안 된 분도 있고 오래된 분도 있는데 처음 오시는 분은 반야법문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다 몇 년 정도 지나면 조금 귀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런 분은 근기가 수승한 겁니다. 저는 1982년에 불광법회에 와서 광덕 큰스님 법문을 일주일에 6번, 토·일요일에는 하루에 두 번씩 한 시간 반 정도를 6년간 들었는데 뜻을 몰라서 일본으로 반야경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불교에서 업보중생, 범부중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거기에 잡혀 있습니다. 신에게서 벌 받을 사람이 아니라 이미 성불한 것을 모르다가 눈을 뜨면 동시 성불이 됩니다. 이 내용은 세계 어디를 가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법문이 아닙니다. 석촌호수의 나무, 잉어 등 사람을 제외한 산하대지 일체존재는 번뇌도 없고 아예 번뇌라는 말도 모릅니다. 그대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이런 법문을 듣고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해도 고정관념에 차 있기 때문에 안 믿어집니다. 믿어져도 법당을 나가면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법회에 왜 자주 가는지 묻습니다. 한 번 들어서 알 수 없고 믿더라도 경계를 만나면 잊게 됩니다. 그래도 불자는 하얀 종이와 같아서 물 들듯이 가능하지만 스님은 물든 종이와 같아서 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염송을 하거나 참선을 하면 어느 날 눈을 뜨게 됩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조금씩 뜨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뜨는 것이라서 돈오돈수가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을 내어쓰는 방법은 『금강경』의 「제6분」 지계수복자, 계를 가지고 복을 닦는다에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 기복불교 중심에서 벗어나자고 하면서 작복, 복을 짓자는 운동이 불교계에 있었습니다. 지계수복자에서 계의 바탕은 자성청정계, 본래청정, 절대청정에 있습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 표현합니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마음자리는 부처님이며 여래, 내 생명, 불성, 자성, 본성으로 본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이해하기 좋은 비유가 바로 허공입니다. 허공은 크기를 잴 수도 없고, 태양을 비롯하여 없는 것이 없고,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생긴 적도 멸한 적도 없습니다.  

  

내 생명, 여래생명은 인식을 넘어선 세계이며 모든 것을 갖춘 화수분과 같은 세계여서 신에게 벌 받는 존재가 아니고 복 없는 존재가 아닌 위대한 생명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광명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크게 빛나기를 바라며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라밀합창단의 ♪자유 평화 행복♪ 삶은 그대로 기쁨이고 행복이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금주의 다짐>

저 사람은 위선자, 악인이다라고 핀잔하였을 때 나는 이미 악인이 되어 있다. 저 사람은 성실한 사람, 신뢰할 사람이다 인정하였을 때 나는 이미 신뢰를 받을 사람이 되어 있다. 보는 대로 나타나고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다. 이웃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찬탄하자. 그래서 뜨거운 우정, 협동의 사회를 만들자.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시래기밥과 된장국을 준비하신 송파12구법회 

 



광덕 법주스님의 동상이 지켜주시는 불광법회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불국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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