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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6.23 조회8,5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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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앓고 있는데 


    

“중생이 앓고 있는데 불보살이 어찌 앓지 않을 수 있느냐.”는 유마 거사의 말을 나는 가장 좋아하고 따른다.

 

 유마 거사는 병문안을 오는 불보살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가 누워 있는 방 안을 텅 비워 놓았다.

 그 텅 비워 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왔다가 텅 비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불가사의 해탈이라는 것이 그 텅 비어[空] 있는 속에 있다.


 박해 받고 못 살고 못 먹고 슬퍼하고 고달파하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나 몰라라 하고 나 혼자서만 깨닫고 나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제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일 터이지만, 일종의 죄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원효 스님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당나라 군사들을 끌어들여 전쟁을 벌였을 때, 분황사에서 『화엄경소』의 「십회향품」을 집필하다가 그것을 내던지고 시장으로 나아가 전쟁 반대 시위를 하신 분이다. 「십회향품」은 실천을 가르치는 대목이다. 전쟁을 주도하는 김유신과 김춘추는 원효를 가만 놔두고는 전쟁을 치를 수 없으므로 요석궁에 연금을 시켰던 것이다.


초의 스님은, 머리 깎은 자가 서울 장안에 들어오면 목을 자르라고 명한 조선왕조 후기를 살았다. 그때 초의 스님은 당대의 지성인 선비와 벼슬아치들과 널리 깊이 사귀었다. 조선조의 불교는 억압의 대상이었다.

 

스님들은 백정이나 갖바치들 같은 천민이었다. 경복궁 공사에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 양반들이 금강산 구경을 가면 험한 산길을 가마에 태워 구경시키는 일을 했다. 양반집 귀부인들이 부처님께 기도하러 오면 그들을 가마에 태워 모셨다.


 그러한 때에 초의 스님은 백성들 앞에 군림하는 선비들을 제도했다. 그 제도 방법의 하나로 ‘차 마시기’를 썼다. ‘차와 선은 한 가지 맛(茶禪一味)’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었다.

부처님께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신 것이 말씀(경전)이므로 그것은 진리 아닌 것이 없다. 차와 더불어 부처님의 마음을 마시는 일은 하나의 큰 수행이다.

 

 나의 모든 글쓰기는 중생제도의 한 방편일 터이다. 나 스스로 부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애쓰고, 글 속에 부처님의 마음을 담으려고 애쓴다.


누군가가 “많은 경전을 읽었는데도 확철하게 깨달을 수 없었는데, 당신의 이러이러한 글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중생이 앓고 있는데 어찌 불보살이 앓지 않을 수 있으랴.

 

 

 

 

월간 불광 2007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한승원님은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가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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