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추녀 품에 든 화엄강당 처마는 수백년 동안 포근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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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10.30 조회10,480회 댓글0건본문
봉정사엔 서로 다른 느낌의 세 개의 마당이 있다더라구요
건축가 승효상씨는 봉정사 대웅전 앞마당을 엄숙한 마당이라고 했다지요
극락전 앞마당은 정겨운 마당, 봉정사 영산암의 복잡하고 화사한 마당...
저는 좀 달랐어요
대웅전 앞마당이 엄숙한 마당이라기 보다 포근한 느낌이 더 많았습니다.
높고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대웅전 앞 마당에 그득해서 그랬을까요
막돌 허튼층쌓기라는 극락전의 기단도 옛 사람의 손길 그대로인지라 돌의 모양이 제각각인 것과
돌 사이 사이의 황토는 어려서 시골 할머니댁에 갔을 때 느꼈던 포근한 기분이 들기도 했구요
봉정사 대웅전 건물에는 다른 대웅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툇마루가 있었는데요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대웅전 공포가 바로 가까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지는 것이
옛 선인들이 펼쳐놓은 고풍의 격조를 교감하는 듯하여 온 몸에 전율이 일고요
요사채로 쓰이는 무량해회의 툇마루는 사찰을 찾은 오고가는 객들이 걸터 앉아
부처님의 법담을, 도반들의 훈담을 나눌 수 있어 쉼이 되는 공간인 듯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제 마음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것은.
대웅전의 서편 추녀 아래 화엄강당의 처마가 닿을 듯이 마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높낮이가 다른 탓에 서로 위 아래로 자리잡아 있는 것이
제가 보기엔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둘 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다정한 이의 어깨 품에 기대어 속삭이는 정겨운 모습처럼 말이죠
수백년을 이어온 그들의 속삭임이 무궁무진할 것 같고요
앞으로 또 수백년을 이어갈 그들의 이야기가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제 상상이 너무 과장될까요
봉정사에 가기 전, 배치도를 보면서 두 건물이 너무 바짝 가까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었어요
지붕이 어떤 모습일지 높이가 다른 곳에 있을테니 어떻게 통로를 만들었을지 궁금증이 생겼었는데요
그래서 한번 더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두 건물의 지붕이 살짝 어긋 나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을 제 상상이 지나친다하여도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전 봉정사 대웅전 마당을 승효상씨처럼 엄숙한 마당이라 하지 않고
포근한 마당이라고 하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