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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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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11.09 조회10,6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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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법

  불교 수행법은 크게 네 가지로 말을 합니다.

  ㅇ 간경 및 독경  -   경전 공부

  ㅇ 참선              -  마음 닦는 길

  ㅇ 염불              -  마음에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ㅇ 참회와 발원   -  뉘우침과 바람직한 삶의 목표 

 


(1) 경전 공부 (간경 및 독경)


  경전(經典)은 부처님이 45년 동안 중생들을 위해 말씀하신 가르침이 담겨 있는 귀중한 보배입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이 45년 동안 설한 진리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에 따라, 이 진리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열심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은 곧 부처님을 대신하는 스승이며, 진리의 인도자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소중히 하여야 하며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2천5백여 년 전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경전이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경전을 삼보의 하나인 법보로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화엄경․아함경․반야경․법화경․열반경 등 그 종류가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 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역사적 보물인 고려대장경을 기준으로 총 1.512종에 6.791권이나 됩니다. 경전이 이렇게 많은 것은, 부처님은 듣는 사람의 지혜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법을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에 알맞는 설법을 하시었고, 남자는 남자에 맞게, 여자는 여자에 맞게, 왕․농부․그리고 수행자나 이교도 등 그 대상에 따라 각자에 알맞는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경전에는 세상일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선악에 대한 것으로부터 인간의 행동이나 마음에 대한 내용, 모든 존재의 본질에 관한 내용, 그리고 궁극적인 깨달음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그 삶과 세계와 진리에 대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되고 행복한 삶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인생을 올바로 보는 지혜를 배우고, 사물을 바로 판단하고, 선과 악을 잘 구별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참다운 삶의 길이 바로 경전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경전은 진리의 말씀이 담긴 귀중한 보배이므로, 경전을 공부할 때에는 부처님을 대하듯이 경건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또 기필코 진리를 깨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연구하는 한편,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독경하는 신행(信行)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선인들께서는 경전을 공부하거나 지극한 마음으로 독경하면 큰 공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공덕을 보자면,

 

  첫째, 모든 허물이 없어지고, 스스로 큰 뜻을 갖게 되며, 뛰어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부처님의 은덕을 알고 공경하게 되며, 일체의 괴로움을 떠날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고, 또 영원한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넷째, 세상과 불교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경전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공경하면 이 세상에서 큰 이익과 안락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경전 공부는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바른 지혜, 바른 생각, 바른 판단을 얻기 위해서라도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얻는 행복한 삶은 어느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을 닦는 길 (참선)


  선(禪)은 특히 마음을 닦는 공부로서, 부처님 당시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 방법의 하나입니다.

 

  선이란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이며, 고요히 생각하여 마음을 닦아나가는 것이 곧 선(禪)입니다. 팔정도의 여덟 번째의 정정(正定)은 이와 같은 선 수행(禪修行)을 통해서 진리에 이르는 길입니다. 즉 마음속의 온갖 번뇌와 망상을 깨끗이 하고 일념에 머무는 것으로써, 이러한 상태를 삼매(三昧)라고 합니다.

 

  이러한 선은 일상 생활 가운데 어느 때 어떤 자세로도 할 수 있습니다. 앉거나 서거나 다니면서도 가능합니다. 조용한 곳이든 시끄러운 곳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 선 수행은 조용한 곳에 앉아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앉아서 하는 선을 좌선(坐禪)이라 하며, 여기에는 정해진 좌법(坐法)이 있습니다. 이를 ‘결가부좌(結跏趺坐)’라고 합니다. 결가부좌는 먼저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왼발은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포개어 놓는데, 자연스럽게 양 엄지손가락을 붙여 둥글게 만듭니다. 코는 배꼽과 일직선이 되게 하며, 눈은 자연스럽게 반쯤 뜨고, 허리를 곧게 폅니다. 이와 같은 자세로 앉아 고요히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주제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몸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라는 등 하나의 주제를 깊이 생각하며 그 실상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또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하여,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세는 좌선법입니다. 이 방법은 정신 집중이 미숙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호흡의 수를 속으로 세면서 잡념을 없애는 일은 초보자라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선 수행은 그 내용이 상당히 깊고 다양하지만, 대개 이러한 방법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지면서 함께 전해진 선수행법은 인도의 달마(達磨) 대사가 중국에 들어와 새로운 선법을 펴면서부터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인도의 왕자였던 보리달마는 일찍이 출가하여 선법의 진수를 깨닫고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습니다. 그는 불법이 장차 중국 대륙에서 크게 발전할 것을 예견하고, 양나라 무제 때에 중국으로 갔습니다. 중국으로 간 달마대사는 무제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법의 진수를 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가 전한 선법이란 인도의 초기 수행자들이 행하던 것과는 달리 인간의 ‘참다운 성품’을 깨닫기 위해 모든 분별과 생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일체의 잡념은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까지도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본래 자신의 참된 성품만을 철저하게 관조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법이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달마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북쪽 숭산 소림사로  들어 갔습니다. 여기서 묵묵히 벽을 바라보며 9년 동안 홀로 마음을 닦았습니다. 그러다가 제자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수하였는데, 그로부터 많은 선사들이 배출되어  대를 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발전한 이 같은 선법은 인간의 참다운 성품, 즉 본래의 자기를 깨닫기 위한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본래 자기의 참된 성품을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며, 인간은 견성함으로써 그 생각이나 삶이 완전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거짓 나’가 아닌 본래의 ‘참 나’로 활동하고 생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선(禪)은 자신의 본래 성품을 분명하게 깨달아 어떤 내부의 잡념이나 외부의 환경에 동요됨이 없이, 크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도 선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이를 실천하여 꾸준히 마음을 닦는 데 힘써야겠습니다.





(3) 늘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 수행)


  염불(念佛)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보람과 기쁨을 느낄 때 부처님께 감사를 드리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부처님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습니다. 마음속으로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자신의 게으름을 물리치고 정의와 자비를 행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 생각마다 부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곧 염불입니다.

 

  염불에는 부처님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 또는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끝없는 번뇌와 두터운 죄업을 없애고 앞으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서 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정토(淨土)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이상 세계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는 극락세계라고 합니다.

 

  정토(淨土)는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옛날에 법장(法藏)이라는 스님의 큰 서원과 오랜 수행의 힘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 때 법장 스님은 정토를 이룩하기 위한 마흔 여덟 가지 서원(四十八大願)을 세웠습니다. 이 서원이 성취되지 않으면 부처가 되는 것까지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한 결과, 마침내 가장 깨끗하고 완전한 국토를 이룩하여 그 이름을 극락정토(極樂淨土)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장 스님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어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그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을 교화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극락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모든 중생들은 아미타불을 부릅니다. 깨끗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열 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의 신앙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 자력신앙(自力信仰)과 거룩한 힘을 비는 타력신앙(他力信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력신앙의 대표적인 예는 참선입니다. 이에 비해 타력 신앙은 부처님의 위대하신 자비에 의지하여 자기를 구제하려는 신앙입니다. 즉 아미타불의 한량없는 자비에 힘입어 정토에 태어나게 되고, 또 그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염불 수행이 이에 속합니다.

 

  염불 수행에는 세 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 거짓이 없는 성심성의로 아미타불을 믿고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둘째, 깊고 깊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제도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셋째, 모든 사람들이 착한 마음과 훌륭한 행동으로 살아서는 이 땅에 정토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죽어서는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자기를 구제하려는 사람은 염불수행 하면서 반드시 이 같은 세 가지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마음에 조금의 잘못이라도 있다면 염불의 가치는 줄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뉘우침과 바람직한 삶의 목표 (참회와 발원)


  사람은 누구나 약간의 잘못은 있습니다. 다만, 그 잘못을 뉘우치느냐, 뉘우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진리의 길을 따라 수행하며 사는 불자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는 대부분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으로 잘하고 잘못함을 평가하여 형벌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종교의 세계에서는 양심의 가치를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뉘우치고 선을 향해 새롭게 다짐하는 일, 즉 참회(懺悔)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수행입니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밥 한 그릇을 먹는 데도 다섯 가지 생각을 합니다. 즉 이 음식이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이 들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그릇의 음식을 대하면서도 자기를 반성(참회)합니다. 어찌 음식을 대할 때 뿐이겠습니까.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해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참회는 수행자뿐 아니라 누구나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불교에는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라는 전통적인 참회의식이 있습니다. 수행자가 대중 앞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의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행사입니다. 그럼으로써 악(惡)을 끊고 선(善)을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참회 뒤에는 반드시 발원(發願)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빠지면 후회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신행(信行)의 세계에서는 이 참회와 발원이라는 두 가지 수행을 통해 모든 잘못을 깨끗이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같이 있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공개하고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참회문을 지어 부처님과 여러 대중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발원문으로 새롭게 다짐하는 원을 세우기도 합니다. 

 

  참회와 발원은 신행 생활의 기본 자세이며, 끝없이 향상하고 심화하려는 인간적인 다짐입니다. 잘못을 범하기 쉬운 인간의 생활 속에서 뉘우침과 반성이 없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보다 나은 인간으로의 성숙을 위해서 참회하고 발원하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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