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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불광인! 대륜성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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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1.16 조회11,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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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 떠난 빈자리

 

당신과 나 인연 맺은 50년 세월 끝을 맺으려고 그 모진 고난과 역경을 겪었단 말인가요?

고생만 하고 간 시간이 너무 억울하고 허무합니다.

한번 가버린 당신 다시 돌아오지 않고 당신의 훈기는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건만 흔적은 없구려.

하늘의 별이 떨어진들 이다지도 암담할까요?

우리의 갈림길이 이렇게 매정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당신 뜨거운 햇빛 아래 추운겨울 엄동설한에 혼자 쓸쓸히 계시는 당신 생각하면

가슴이 멥니다.

자연의 섭리는 오고가련만 한번 간 당신 다시 볼 수가 없구려.

어찌하면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이별의 아픔이 이렇게 힘들지 정말 몰랐네요.

어느 초봄 풀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보며 우리가 앞으로 저 새싹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생의 애착을 느끼며 하시던 말씀 일 년이 못가서 가셨구려.

한평생 용감하고 당당하고 자애롭던 당신, 항상 풋풋하게 살던 당신, 그 씩씩하던 용감성은 어디로 가고

그리도 힘없이 맥없이 가셨단 말입니까?

당신이 가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애지중지 가족사랑 불광사랑 못 잊어서 어찌 가셨습니까?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는 당신의 길 당신이 좋아하던 하산 꽃동산에 해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승의 애착 다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해탈의 날개를 타고 훨훨 날아 상생의 경지에 연을 맺으시어

이생에 못 다한 소원 이루소서!

남아있는 가족의 애절함이야 표현할 길 없으나 당신의 훌륭한 삶에 누가 되지 않게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디부디 밝은 모습으로 연꽃동산에 찬란히 빛나소서. 왕생극락하소서!

나무 마하반야바리밀

정해년 십일월 일일

대륜성 양문정

 

화선지 위에 그리움이 먹물처럼 번진 이 글은 2006년 11월 1일 갑자기 임종하신 하산 박충일님을 그리워하는 부인 대륜성 양문정님의 사부곡(思夫曲)이다.

박충일님은 “불교”와 “인쇄”를 평생의 주제로 하루하루를 용맹정진의 날로 삼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전력을 다하여 사셨던 분으로 신흥피앤피 대표, 대한인쇄문화협회 회장, 조계종 중앙신도회고문, 불광법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동국대 졸업 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동국대학교 내 인쇄소였으며 65년부터는 독립해서 신흥인쇄소를 운영하였다. 이후 동국대의 “불교학보”, “고려대장경 영인본”, “석보상절 영인본” 등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세상 떠나기 몇 달 전에는 그의 오랜 소망 끝에 파주 출판도시에 최첨단 설비를 갖춘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직지)을 세계에 알려서 2001년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60년대 초반 광덕 스님을 만나게 되고, 일생의 스승이신 스님의 법문을 흘려보내기 아까워 스님께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자고 제안하였고 광덕 스님께서 “한 권의 책은 법사와 같다”며 이를 받아들여 탄생한 것이 <불광>지다. 그는 1972년 언론 탄압정책으로부터 당시 유일한 불교계 신문이었던 <대한불교신문>을 지켜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굵은 선으로 살아온 그가 애지중지하던 4녀2남을 키워낸 가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랫집에 이사 온 야무져보이는 경상도 총각이 어느 날 양씨 처자 댁의 어머니를 찾아와 그 집 처자와의 결혼허락을 구하였는데, 어머니는 그 총각의 당돌함보다는 씩씩한 기상을 높이 사 따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한다.

“얘야~ 그만한 총각 없다.”

 

 역시 그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는데 결혼 후 첫딸이 아직 어릴 때 “아이는 내가 봐줄 테니 당신은 대학공부를 시작하시오.”라고 하였고 국문학과를 마친 그녀는 서점을 운영하는 등 적극적인 내조자가 되었다. 박충일님이 불광법회와 광덕스님의 든든한 날개 역할을 하는 동안 그의 도반인 아내 양문정님은 재무보살로 명등보살로 불광사의 주춧돌 역할을 하였다.

 꿈속에 나타난 부처님을 뵙고 새벽 세 시에 벌떡 일어나 “꿈에서만이 아니라 실지로 부처님을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끝에 뜻하지 않던 곳에서 일이 잘 풀리어 감사히 모시게 된 것이 불광사의 부처님이라고 한다. 그 후로도 조건부가 아닌 기도, 남을 위한 기도의 실천으로 그녀가 명등보살로 있던 당시 강남구법등은 4개 법등에서 28개 법등으로 늘었다고 한다.

 

 

박충일님과 양문정님은 강한 의지와 사랑으로 그들의 가족과 회사와 법우들을 품었고, 그 결실은 가족과 사원들과 불광가족의 마음속에 그들을 닮은 강한 의지와 사랑의 힘이 되어 남을 것이다. “사이 좋으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은 저희에게 언제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지만 자식들이 열심히 노력할 테니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님의 건강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는 며느리(이지현)의 소박한 마음이 따뜻하다.

 

인생선배들에게서 우리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먼저 가신 님의 빈자리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양문정님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맞이한 이 생애를 간곡한 마음으로 살아내는 그녀의 절절한 마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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