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스님을 찾아서- 3. 지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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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1.18 조회11,745회 댓글0건본문
제가 고등학생 때 불광여름캠프에 참가 했었는데 그 곳에서 법사스님이었던 지명스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때가 1988년인가 1989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10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의 열렬한 환호에 마지못해 앞에 나서게 된 지명스님은 두 팔을 양옆으로 넓게 펼치고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여서 가수 송창식 흉내라도 내는 듯싶더니, 이내 좌․우 현란한 고개놀림과 재빠른 노래 가락으로 학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여느 공연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지명스님의 놀라운 공연?
이 예전에도 몇 번 있었는지 제 옆에 있던 한 학생이 절대로 지명스님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바닷가에서도 지명스님은 누가 학생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바다와 백사장을 뛰어다니며 학생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러한 지명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가져왔던 스님에 대한 권위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날려버렸습니다. 지명스님은 아주 소탈하신 분이셨고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 맘 때쯤 우리 법등의 한 노(老)보살님이 지명스님이 참 잘 되셨다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지명스님이 계신 동명사가 재개발지역에 포함 되면서 보상을 듬뿍! 받고 다른 곳으로 이전 하게 되었는데 이미 넓은 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일처럼 기뻐하셨던 보살님은 약 20년 전, 지명스님이 불광사에서 사시기도를 집전하실 때 한 달에 한 번씩 떡을 시루에 그대로 담아서 들고 왔었는데 그러면 지명스님께서 하시던 기도를 멈추시고는 달려와서 떡을 받아 부처님 전에 올려 주셨다고 합니다. 다른 보살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전을 멈추고 떡을 받아주시는 스님이 이 세상 어디에 계시겠느냐며 어이없어 하면서도 무척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지명스님이 잘 되셨다며 여간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저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명스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이 흥분되고 설레었습니다.
동명사는 강일동에서 하남시로 옮겨와 새롭게 단장하고 있었습니다. 번화가나 주택가가 아닌 인적 드문 곳이어서 승용차가 없으면 다녀가기 힘들겠지만 탁 트인 넓은 대지가 무척 부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직은 비닐하우스들로 커다랗게 공간을 메우고 있었지만 여기 저기 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고 여러 개의 간이 화장실들이 동명사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법당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넓었고 아늑했습니다. 그 옆 지명스님의 거처도 겉보기와는 딴 판이었습니다. 책상 너머로 반갑게 맞이해 주신 지명스님께서 불현듯 일어나셔서 음료수며 홍시며 맛있는 쵸코렛이라며 가득 내어 오셨습니다.
지명스님은 무엇이든지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고 목소리에 힘이 넘치셨는데 예전에는 목소리가 더 칼칼하셨다고 합니다.
지명스님은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남자형제만 여섯이었다고 합니다. 스님에게는 동국대 교수로 있었던 양어머니와 군인이셨던 양아버지가 계셨는데 그 분들이 마련하신 절에 가서 석주스님과 무진장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조계사에서 광덕스님의 법문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통도사에 쉬러 갔다가 인근에 있는 피로암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든 말든 아무 미동도 없이 물고기만 들여다보고 있는 한 스님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러고 있는지 퍽 인상이 깊었던 차에,
그 스님께서 지명스님에게 “너 중 되려 왔냐? 여기서는 받아줄 수 없으니 통도사로 가라”는 말에 이왕이면 석주스님과 무진장스님이 출가하신 범어사로 가서 스님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범어사로 가서 머리를 깎으셨다고 합니다. 그 때가 1982년이었고 스님의 속가나이로 27세였다고 합니다.
행자생활을 보통 6개월에서 길면 1년 정도 하게 되는데 지명스님은 “행자생활은 오래 할수록 좋다”는 스님들의 말만 믿고 행자 생활을 31개월이나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속은 것이었다며 웃으셨습니다. 그 때는 운전면허증이 귀할 때였는데 마침 지명스님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세속적인 운전면허증을 쓸 일이 있겠느냐며 출가하면서 입고 있던 옷가지와 함께 버렸는데 한 스님이 버린 운전면허증을 언제 챙겨두었는지 다시 돌려주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스님은 운전이 필요한 각종 심부름이며 장보는 일, 스님을 모시고 다녀오는 일 등등 모든 범어사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31개월 동안! 그렇지만 속았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이고 정말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내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었던 때가 그 때였고 스님들께 공양을 잘 올릴 수 있었던 때가 그 때였다고 합니다.
지명스님은 극락암에 계시는 지효스님의 상좌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좁은 소견으로 서울에서 포교활동을 하시는 광덕스님은 수행을 안 하는 스님이고, 지효스님의 상좌가 되어야지만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덕스님의 상좌이자 마하사 주지스님으로 있었던 지환스님이 “광덕스님은 훌륭한 스님이야!”라며 어느 날 광덕스님으로부터 ‘지명’이라는 법명을 받아온 것입니다. 지환스님덕분에 광덕스님의 상좌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명스님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6년간 불광사에 있으면서 궁금한 것만 있으면 은사스님(광덕스님)을 찾아가서 물어보았는데 그렇게 지명스님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시고 바로 바로 시원하게 그리고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은사스님을 안 뵈었더라면 어디에서 그렇게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 수 있었겠느냐며 지금은 돌아가고 안 계신 은사스님의 그늘이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지명스님은 강원에서 공부할 때 너무나 현학적인 교수법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지명스님 당신이라면 쉽게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나름대로 강원 강사스님들에 대한 불만을 은사스님(광덕스님)께 말씀드렸는데 은사스님은 도리어 “야, 이놈아! 너나 잘해!”라고 꾸지람을 하셨다고 합니다. 뜻밖의 말씀에 잠이 오지 않았고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때 그 말씀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코끝이 찡하도록 말입니다. “너나 잘해!”라는 그 말씀을 듣고 난 뒤부터 지명스님 자신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난 후로 다른 상황도 있었지만 스님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접게 되었고 불광사를 떠나서 1994년도에 암사동에서 동명사라는 포교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비록 스님들에게 불법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접었지만 지금 다시 포교원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들을 원하는 스님이 있다면 언제든지 누구에게든 모두 알려주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명스님은 스님으로서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출가할 때의 그 생각 즉 ‘나는 스님이다, 수행자이다’라는 출가 정신과 또 하나는 ‘승려로서 공적인 일을 먼저 한다’라는 사상으로, 이 두 가지만큼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자라면 절에 다니면서 입지발심, 공덕성취, 수행회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현행자의 서원으로 입지발심을 하고 공덕성취를 위해 여러 가지 염불, 절, 기도 등의 수행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야행 즉 보현행원의 실천이 중요하며 그러한 실천을 통해 불자들 마음에서 생활에서 기쁨이 절로 우러날 수 있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으로 다 완성한 뒤에 실천을 하겠다고 하면 언제 실천을 하겠느냐며 본생명이 원래로 밝게 빛나고 있는 반야광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명스님은 동명사 포교에 70%정도 만족하신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30%의 아쉬운 점으로서 체계, 인력, 공간부족, 아이템 부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전의 은사스님의 시스템으로부터 많이 달라졌고 우리의 불사는 끝이 없겠지만 인재불사(스님불사) 등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발 죽기 전에 1명만 절에 데리고 와서 불자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올바르게 믿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 써야할 것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지명스님은 이야기를 마치시고, 앞으로 큰 법당에 모실 부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 분의 부처님(약사여래 석가여래 아미타여래)이 또 다른 커다란 비닐하우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크고 웅장한 자태에 금칠하기전의 숭고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함께 간 미디어팀의 한 보살님이 웃으면서 불광사로 훔쳐가자고 하던데요, 정말 그러고 싶었습니다!^^:;
문도 스님을 찾아서 세 번째 이야기에 지정스님, 지현스님에 이어서 지명스님을 찾아뵙게 되었고 이번에도 좋은 말씀 많이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가졌던 인정 많고 자상하신 지명스님이라는 생각은 오늘 긴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불사는 끝이 없으며 불자와 스님들이 함께 노력해가자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지명스님의 동명사 불사도 잘 되기를 기원 드립니다.
마 하 반 야 바 라 밀
글 화엄심 / 사진 법화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