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선원장 - 무각스님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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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2.25 조회12,204회 댓글0건본문
불광선원장 무각스님을 뵙고
불광 인터넷 미디어팀에서 불광교육원장 법인스님에 이어 불광선원장으로 부촉받으신 무각스님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공생선원장으로 계신 스님은 2005년 동안거부터 불광선원에서 참선지도를 계속하고 계시며 2007년 12월에 불광선원장으로 부촉받으셨구요, 매주 금요일이면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발걸음이 늘어 문수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스님이 되시기전에는...
“삶에 대한 방황을 많이 했어요. 늘 무언가 부족한듯하고 아프고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사보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던 중 조그만 빛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마치 구름 가득 낀 회색하늘에서 구름사이로 한줄기 햇살이 비추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불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다독(多讀)한 책의 양만큼 구름도 걷히고 하나 둘 의문이 풀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근본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답을 찾는 과정 중 85학번으로 동국대 불교학과에 진학을 결심하고, 진학하기 위해 일년간의 입시 공부는 방황하느라 멀어졌던 학교공부라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었답니다. 오랜 방황끝에 찾은 불교공부, 스스로 찾은 길을 가는 학생으로 스승들의 각별한 믿음과 격려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 인도철학과 원의범 교수님은 진리에 대해 철학에 대해 토론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한 각별한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해 주십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칭 타칭 튀는 괴짜 3인방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턱수염과 머리를 길러 흔히 불리는 도사처럼 하고 다녔답니다. 하루는 캠퍼스 잔디위에서 괴짜 3인방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는데 머리긴 도사학생이
“나는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노라”
스님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얼굴에 주먹을 한방 날리고
“누가 맞았느냐 일러라”
허허 웃기에 다시한번 주먹을 날리자 잔디위에 벌렁 나가떨어지고
“맞은놈이 누구냐 일러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사건이후로 머리긴 괴짜 학생은 학교에서 모습을 감추었답니다. 불법인연이 깊어져 대학 4학년이 되어 월정사로 출가를 하였는데, 그곳에서 행자반장으로 그 괴짜 학생이 스님을 맞이하더랍니다.
불법인연이 묘해서 어느것 하나 우연이 없음을... 수승한 불법인연으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거룩한 스님의 길을 가게 된 것이지요. 주먹 두방이 맺어준 수행인연이겠지요. 그렇게 괴짜스님과 행자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졸업하며 사미계, 비구계를 받으시고 혜거스님을 은사스님으로 스님이 되셨답니다.
스님의 화두는 판치생모(板齒生毛)?
대학 1학년 때 인천 용화선원 송담스님께 ‘이 뭣고’의 화두를 받았는데, 송담스님의 스승 전강스님의 법문테잎을 듣다가 ‘판치생모’에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판자 이빨에 털이났다?’ 의문이 깊어지고 참구하는 시간이 간절해지고 ...
“힘든 경계가 사라지자 가을들물, 명경지수, 바람한점없는 고요하고 청량한 호수처럼 확연이 드러나더라. 초발심때의 경험이었던 만큼 기쁘고 감사하고 소중하고 ... 그랬습니다.”
미국에도 계셨다던데...
비구계를 받으시고 대행스님과 인연이 있어 미국의 한마음선원에서 3년간 머무르셨고 미국에서의 3년은 토굴생활이었다고. 평일에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어 예불하고 기도 참선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답니다. 3년을 하루같이 단순하고 간결하게 생활하며 조사어록을 공부하며 넒어지고 깊어지는 수행을 하셨답니다.
미국에 가셨으면 관광이나 문화체험을 할 기회도 있었을텐데, 간결한 삶을 오로지 스스로 선택에 의한 수행으로 삼으셨답니다. 외부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수행하고 순수해진 심신은 더욱 청량해져 생명의 뿌리깊은 근원과 둘이 아님을 교감하게 되었답니다.
넓은 절마당 정원에서 조사어록을 참구하며 민들레의 깊은 뿌리를 뽑아내는 시원함과 끊어진 깊이모를 잔뿌리를 통해 업식의 질긴 모습을 발견하고, 곳곳에 또아리를 뜬 뱀을 보고 ‘나 놀래는 소리에 니가 더 놀랬구나’ 하는 자비심도 키우고, 사슴이나 새들의 형상이 이쁘다 하여 분별할것이 없다는 평등한 우주의 진리를 공부할수 있었답니다.
만나는 모든 형상을 통해 법의 나툼을 보시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통해 요정을 만난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미국에서의 3년이 토굴생활이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에게 닥쳐오는 크고 작은 일들이 공부아닌것이 없고, 그것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회주스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지홍스님께서 불광사 어린이법회 소임을 보실 때 동국대 학생으로 어린이법회 보조교사를 했어요.”
그 때 회주스님은 음악(국악, 판소리, 가곡 등)에 관심이 많아 스님방에 가면 듣고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답니다. 법회후에는 맛난것도 사주시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으로 기억되었고 조계사에서 다시 뵙고 오늘의 인연으로 이어졌답니다.
불광선원장으로서 하고싶은 이야기
“불광사는 도심포교의 중심에 우뚝 선 깃발이었습니다. 광덕큰스님을 우러러 존경해왔고 그분의 바라밀 사상이 다시 활발하게 펼쳐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반야바라밀 사상을 통해 불법의 진리를 체험하고 모두가 평화로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자의 의무이고 부처님의 부촉임을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부처의 길, 진리의 길은 승속이나 남녀의 구분을 떠난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나를 맑히고 주위를 맑혀 불법이 전해지고 사회가 밝아지는 전법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인터뷰 후...
두서없는 질문에 자비심으로 긴 시간을 내어 귀한 가르침을 들려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올해 2월초에 대한불교조계종 대덕스님품계 받으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공경과 찬탄의 예를 올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