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불광" 에 게재된 법진(정동철)거사님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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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5.13 조회13,739회 댓글0건본문
믿는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삼심(三心)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초심, 열심, 뒷심.
어느 듯 50을 넘기고 보니 이제는 뒷심으로 살아가야할 나이가 아닌가한다.
뒷심이라는 것은 든든한 배경인데, 다행히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의지처가 생겼다.
내 곁에는 부처님이 계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부처님을 만난 것만큼 큰 행운은 없을 듯싶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필자는 학창시절에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세상의 모든 일을 안주삼아,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소위 개똥철학을 논하곤 하였다.
젊은 놈이 예의가 없다고 개탄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예(禮)란 볼 시(示), 풍성할 풍(豊)으로 풍성(좋게)하게 보이는 것이 예의다.
남 보기에도 좋고 내가 보기에도 좋으면 그것이 예의지 별 다른 것이 없다.
다만 예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절대성이 없다“
라고 하는 등 내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곤 했다.
종교 또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가는 곳이 절이요, 교회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이 세상 최고의 행운아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니 굳이 종교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항상(恒常)하는 것은 없는 법.
나의 생각이라는 것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다니던 직장생활을 본의 아니게 정리하고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이라고는 처음 해 보는데다가 거래처부도로 경제적 피해가 커지자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모두가 엉망이 되었다.
초조하고 불안하다보니, 자연 화도 자주 내게 되면서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젊은 시절 “최고의 행운아”가 무지막지하게 만신창이가 되어 사방을 헤매고 있을 즈음, 신심이 돈독한 집사람이 ‘반야심경 사경(寫經)’을 권했다.
사경을 하면 사업도 잘 되고 돈도 잘 번다는 꼬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야심경 사경을 시작했다.
그 때가 초여름 쯤 되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일 배(拜)하고 한 자 쓰는 것을 반복하니, 땀은 비 오듯 흐르고 힘들었지만 가까스로 사경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경을 마치고 나니 온갖 의문들이 샘솟듯 솟아났다.
‘도대체 이 힘든 절은 왜 하는가? 부처님은 있는가? 불교를 믿는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 - - 등등 궁금증은 날로 더해갔다.
복도 받고 궁금증도 풀어 볼 겸, 집사람을 따라 절에 나가 불교공부도 하고 법문도 들었지만,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 의문은 여전하고 오히려 머리만 더 혼란스러워 졌다.
특히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든 어느 날 우연찮게 고산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그 의문이 단박에 해소되었다.
특별초청법사로 오시어 법상에 앉으신 고산스님은 대뜸 “부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셨다.
부처님을 받드는 것, 공양하는 것 등등 여러 대답을 들으신 스님은 단 한마디로 “믿는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마치 고압전류에 감전이 되는 듯한 강한 충격과 함께 강렬한 느낌이 가슴으로 확 와 닿았다.
‘그래, 믿는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의심이 끊어 졌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나의 행동에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일일이 헤아리고, 의심하는 버릇이 사라지니 불교공부가 재미있었고, 이해의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부처님 법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니 당당하고 자신 있게 부처님의 법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부처님 법은 공부할수록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도반들과 함께 거리전법을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강한 법우애(法友愛)를 느끼며 나의 믿음도 더욱 돈독해 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았다.
불법을 처음 접하는 그 분들도 언젠가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가질 수가 있었다.
어느 재벌회장의 말이 생각난다.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직원에게 “해 보기나 해봤어?” 라고 말했다는데, 나는 부처님 법에 귀의하기를 주저하는 법우에게 “믿기는 해봤어?” 라고 되묻고 싶어진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의 채널을 ‘의심’보다 ‘믿음’에 맞춰 보라.
그리하면 인생의 새 봄은 그 때부터 새롭게 펼쳐지리라.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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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진 정동철 .. 경상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 후 한보철강과 포스틸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욱동금속주식회사 대표로 있다. 불광법회를 통해 불교에 입문한 후 전법을 수행삼아 힘차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