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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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6.27 조회14,468회 댓글0건본문
말(言)의 힘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최상의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기로다 아름다운 그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고 깨끗한 그 성품이 영원한 법신(法身)일세』
-문수동자게(文殊童子偈),「 宋高僧傳」-
말(言)은 마음을 담아내고 존재를 규정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산다. 그러므로 평소 맑고 고운 마음 가꾸기에 애써야한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아름다운 사람관계가 형성된다. 여유 있고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과 마주할 때면 적절히 우려낸 차(茶)에서처럼 맑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절제된 욕망과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마치 꽃길에서 선뜻 부는 바람에도 향기가 일듯이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는 꽃향기가 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말속에서 그 사람만의 성품(性品)을 발견한다.
요즈음 우리들은 TV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 매체들이 쏟아놓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가슴 한구석에 쓸쓸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고 마는 그 수다스러움 속에서 말의 진실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말은 언젠가부터 그 진실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그저 가벼운 재잘거림에, 일시적인 욕구 해소에 값하고 있는 듯하다. 오랜 참구參究 끝에 깨달음 그 환희의 기쁨. 끝내 어두움 속에 묻혀버릴 것만 같았던 침묵을 깨고 가슴에 차오르는 감격은 오도송悟道頌처럼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거기에는 진리로 충만한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 일상의 말 또한 진지한 삶을 통해 걸러질 때 비로소 그 깊이와 무게를 지니게 됨은 물론이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일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사랑 한다’는 말 자체에 있지 않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진실한 마음과 행위가 담길 때 그 말은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말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 진정 살아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성현들의 참다운 말을 만남으로써 우리들의 생은 새로워지곤 한다. 이는 해묵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말 자체의 힘 때문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팔만사천법문이 2,6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위신력威神力을 갖는 것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 마음이 담긴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하고 오체투지하는 것은 진실한 말이 갖는 힘에 의해서이다. 향기로운 말은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 생각은 우리 마음을 그러한 곳으로 이끈다. 진리가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듯이.
또 말을 통한 격의 없는 애정이 담긴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신뢰로 화합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혹은 자기 생각에만 갇혀 사는 습관 때문에 마음 터놓는 대화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또 노인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담긴 따뜻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經에, 제자가 부처님께 어느 나라의 앞날을 판단해 주길 부탁드렸다, 부처님은 그 나라에서 왕과 군신, 그리고 백성들 간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묻는다. 제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은 그 나라는 절대 패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 대화는 사람들 사이에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허심탄회하고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이나 사회, 나라는 절대 패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부터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며 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이러한 의사소통과정을 통해 같은 시대와 문화를 공유하며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사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 생각을 담기도 하지만 말 자체에 생각과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확신이 가득한 말은 현실적으로 무엇이든 실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입시를 앞 둔 수험생 책상 앞에 “필승”이라는 글귀가 씌어있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긍정적이고 힘이 있는 말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 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한다. 어느 날 그가 학교에 가고 없을 때 그의 집에 불이나 다 타버렸다 한다. 그의 가족은 화재로 기거할 곳조차 잃어버리고 정말 비참한 신세가 되어 남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온 그는 아연하여 어머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있잖니’ 그때 그는 그 말을 믿고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한다. 그는 가끔 세상 살기가 버거워질 때면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있잖니’하는 어머니가 한말을 떠올리곤 한단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한 상실감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모두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안간힘쓰고 있다. ‘말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가르침이 있다. 사소하고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그대로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되어 꽂히고, 또 스스로의 마음도 다치게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말로 이 어려운 시기를 더욱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 진정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있어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의 말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긍정적인 말에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좌절과 실패를 암시하는 말로 앞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 필요는 없다. ‘말은 씨가 된다’ 하므로.
아름다운 빛깔로 생명의 절정을 노래하던 가을 단풍은 이제 막 그 화려한 외출을 마치고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본래의 그곳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거리는 황량한 바람과 함께 그들로 스산하다. 어수선하고 삭막한 세상살이 또한 우리들에게 본래의 자리로의 회귀(回歸)를 꿈꾸게 한다. 비록 가난했지만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있었던, 그리고 군불이 따뜻했던 ‘한 겨울의 그 방’으로. 마실 방이었던가. 아낙들의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가, 장년들의 고뇌 어린 인생 이야기가 녹아나던 방. 그리고 아이들이 꿈과 상상이 하늘을 닿았던 그 방이 그립다. 말은 무성하나 진정한 대화를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대화의 방’이다.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 안으며 다시 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의 모색을 위하여....................
1997년 늦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