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plus 첮돌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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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9.17 조회15,735회 댓글0건본문
공감Plus 첫돌을 맞이하여
40대 이상 한국 사람들 중에는 생일이 1년 이상 늦는 사람들이 많다.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60년대까지만 해도 돌을 못 넘기고 죽는 아이들이 많아 1년 정도 지나서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늦은 출생신고에는 아이가 1년을 넘기면 죽을 염려는 없다고 보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첫돌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돌이 되면 아이는 특별히 늦지 않는 한 걷는다. 누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설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는 선언과도 같다. 새는 나는 것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들은 뛰는 것으로 입증한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태어나자마자 일어서고 뛰어다니는 것과 달리 인간은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1년을 보내야 한다. 동물들처럼 마음껏 뛰어다니기까지 몇 돌을 더 보내야 하는 인간이 그들 눈에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1년이 지나 걷게 된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생존 조건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활동범위는 그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어진다. 누워 있을 때는 바닥과 천정만 쳐다보다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방안으로 무대를 넓히고 이제 집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다닌다. 아이의 부모도 덩달아 바빠진다. 자칫 한눈팔면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질 수도 있다. 사고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걸어 다닐 때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모두 위험인자가 된다. 그것은 부모가 관여할 범위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는 아이 스스로 험한 세상을 헤쳐 가도록 교육한다.
제 힘으로 일어선다는 것은 이처럼 세상을 향한 인간의 첫 몸짓이다. 그 시점이 바로 돌이다. 그래서 한국의 옛 부모들은 돌이 지나 걸어 다닐 때쯤 죽을 걱정을 털어 버리고 아이를 비로소 세상에 드러내 호적에 올린 것인지 모른다.
「공감Plus」가 첫돌을 맞았다. 「공감Plus」는 출발부터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그것은 사찰의 일과 지역의 문제를 함께 담아내는 일이었다. 지난 1년을 오면서 출생신고를 늦춘 부모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정말 제 스스로 설 수 있을까? 서서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공감을 무엇이라 평가할까? 무관심으로 냉대할 것인가?
처음 세상에 내놓을 때부터 많은 걱정을 하고 두 달에 한 번씩 나올 때마다 가슴을 졸였는데 어느새 한 돌이다. 우선 기쁘다. 혼자만의 자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 1년을 지났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만드신 「유심」도 3개월 밖에 버티지 못했다. 쓸데없이 비교하며 더 큰 광영을 슬며시 기대해보기도 한다.
1년 동안 고생한 편집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취재하고 사진 찍고 원고 쓰느라 뛰어다닌 제작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제 돈 써 가며 시간을 쪼개 「공감Plus」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 미디어팀이야말로 이 시대의 보살들이다. 누가 그랬던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공감Plus」를 만드는 미디어팀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또한 독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각자 보는 사연은 다양하지만 어쨌든 독자들은 「공감Plus」와 인연을 맺었다. 독자는 「공감Plus」라는 잡지가 존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유다. 열심히 읽어 주는 독자가 있어 「공감Plus」를 만드는 사람들이 힘을 낸다. 지난 1년간 잘 만들었는지는 독자 분들이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다면 「공감Plus」는 더 많은 세월을 살고 싶어도 살 길이 없다. 그러니 늘 독자의 의견을 청취하며 만들어 간다.
한 돌을 맞이하여 지나간 소회와 더불어 앞으로 할 일을 몇 자 적어두고자 한다. 「공감Plus」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공감(共感).’ ‘함께 느낀다.’ 즉 서로 소통한다는 뜻이다. 함께 느끼기 위해서는 서로 잘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 대화해야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오해도 풀린다. 감옥 체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옥에 갇힌 남자들은 서열을 세우는 반면 여자는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나이 많아 서열이 높은 ‘대장’이 지시를 하고 여자들은 서로 대화하며 역할을 나눴는데 소란은 늘 남자 감방에서 일어났다. 못 견디고 중도에 탈락하는 것도 남자였다. 소통은 어려운 사람에게는 힘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이 된다. 「공감Plus」는 소통하는 통로 역할을 자임하고 마음을 나누고 애환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무엇을 공유하고 나누는가? 대상은 제한이 없다. 우리 지역사회의 일이든, 정치・경제 등 국가적 과제이든 아니면 불교의 교리라도 상관없다. 「공감Plus」가 담지 못할 내용은 없다.
‘공감’은 함께 소통하며 살고 함께 나누는데 있다. 이 세상은 켜켜이 쌓여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나는 그 끝없는 세상에 매달린 하나의 축에 불과하다. 그 끝없이 펼쳐진 세상과 나는 오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나와 관계 맺는 모든 사람이 바로 내가 모시고 받들어야 할 부처님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물질이나 도시 환경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받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에도 달려 있다. 우리가 공감하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공존이다. 적어도 우리 지역만이라도 사람이 사람을 믿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람으로 대접하는 그런 사회로 만들자는 것이 「공감Plus」가 탄생한 이유며 앞으로 살아갈 목표다.
그래서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지혜가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