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스님을 찾아서 - 4. 지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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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09.26 조회15,912회 댓글0건본문
제 2의 불광사를 꿈꾸며...불광정사
9월16일, 불광정사 대웅전 처마의 길고도 우아한 자태가 단청의 화려한 색과 너무나 잘 어울려서 감탄하기 바빴는데요, 역시 장인의 손길은 다르더라는 지암스님의 말씀이 공감이 가는 아름다운 처마와 단청이었습니다.
지암스님은 불타버린 보현사를 중건하실 때 동방불교대학 교수님과 그 학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보현사의 불화며 벽화등이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불광정사의 것보다 못하다며 보현사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쁘게 단장되어가고 있는 불광정사 대웅전이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편치만은 않으신 듯 했습니다.
지암스님은 불광사에서 주지소임을 맡으면서 법주스님을 꽤 오랫동안 시봉을 했습니다. 법주스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불광사를 떠나면서 지금의 불광정사 자리에 터를 사 두었다고 합니다. 제 2의 불광사를 그리면서요.
그러나 선방을 돌며 공부하고 돌아오던 중에 불에 타 버린 보현사를 보며 법주스님의 성지나 다름없는 그 곳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보현사로 먼저 발길을 돌리시고 보현사불사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보현사를 오가며 불광정사 불사에 다시 원력을 세우고 계십니다. 여전히 동글동글하신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칼한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거칠어진 손에서 지암스님의 불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지만 어쩌다 올라온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밀고 간 불사금에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 서울에서도 한 참 떨어져 있는 이곳 양수리에 오는 사람들이란 그렇게 멋모르고 길 따라 올라오다가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 전부일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칩니다.
넓은 대지에 유일하게 곱게 단장되어 있는 대웅전이지만 아직 부처님도 모셔져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손 볼 곳도 많은 것 같은데 추석명절뒤라서 그런지 인부들은 보이지 않고 스님만 분주하신 것 같아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당에 그려져 있는 법주스님과 그 은사스님이신 동성스님이 지암스님을 잘 지켜주시리라 생각하며 불광정사의 불사도 원만 성취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올 초봄에 보현사를 방문해서 인터뷰하고 써 두었던 글을 함께 올립니다.
○ 큰 스님의 성지나 다름없는 보현사
보현사에 계시는 지암스님을 3월12일 미디어팀에서 만나 뵙고 왔습니다.
더불어 점안식 때는 보지 못했던 대웅전 오른편의 법주스님(광덕스님)의 벽화와 좁아서 두 분만 모시고 있다는 산신각, 그리고 관음전의 오래된 벽화도 다시 한 번 눈여겨보았고 이 곳 관음전에서 열심히 철야정진 하셨다는 법주스님의 자취도 느껴보려고 애썼습니다...^ ^
보현사를 일컬어 지암스님은 ‘성지’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은 불광사 불사가 이루어지기전 큰 스님(광덕스님)께서 대략 삼사십년간 머무셨던 곳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현사는 원래 한 보살님이 능가스님께 드리려고 했던 절인데 큰 스님의 기도모습에 감동받은 보살님이 큰 스님께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지나 다름없는 보현사에 불이 나서 불사를 하지 않으며 안 되었고 이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지암스님께서 보현사에 오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의 어려움은 형용할 수도 없지만 불사가 잘 마무리 되어 큰 스님의 벽화까지 그리게 되었고, 이제 이 벽화가 다하는 날까지 보현사는 큰 스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며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사채의 방 한 칸도 큰 스님의 유품으로 채워 두고 있으며, 늘 이것을 살피며 큰 스님을 느끼고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큰 스님의 이야기도 출판하실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큰 스님이 잊혀 질 때쯤 큰 스님을 그리며 큰 스님의 사상과 더불어 글로 남기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지암스님의 말씀 곳곳에서 큰 스님의 자취가 묻어나 지암스님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큰 스님을 뵙고 있는 것 같았고 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큰 스님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왔는데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나오게 될 지암스님의 책에 더욱 기대를 걸어봅니다.
○ 큰 스님을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지암스님
지암스님은 19살에 범어사에서 출가하셨습니다. 지암스님은 큰 스님의 상좌가 되고 싶어서 행자 생활만 3년을 하셨다고 합니다. 범어사 주지스님이셨던 덕명스님께서 지암스님을 상좌로 삼고 싶어 하셨는데 지암스님은 큰 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시고 싶어 계를 미루며 3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스님의 상좌가 된 지암스님은 큰 스님을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도 참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운전배우라고, 대학원 다니라고 학비를 받은 상좌스님은 지암스님 밖에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
해인사 강원을 나오신 지암스님은 큰 스님을 모시고 대각사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늘 철두철미하게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만들어 가는 큰 스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한번은 큰 스님이 보현사에 계셨을 때 꽃 보러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현사로 가서 큰 스님을 모시고 꽃을 찾아 산으로 산으로만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지암스님이 방긋하고 웃으면 되는 것이었다며 두 손을 펴서 귓가에 대는 제스처를 취하시는데 그야말로 한 송이 꽃(?!)이었습니다.
불광사에서 큰 스님을 모시고 11년간을 시봉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스님을 시봉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지암스님은 큰 스님께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큰 스님께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며 그것은 법대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차도 법이 있어야 지나다니는 것 아니냐는 그 말씀에 크게 느끼고 큰 스님 곁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기쁘게 스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전에 불광사 주지소임을 보면서 늘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큰 스님 곁에 머물며 스님이 읽으라는 경전을 읽어드리는 일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번은 큰 스님께서 눈을 감고 계셔서 주무시는가 보다며 경전을 슬쩍 넘겨 읽었다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다시 읽으라는 큰 스님의 말씀에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를 회상하시는지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지암스님의 얼굴에서 큰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지암스님은 그렇게 큰 스님이 열반하실 때까지 큰 스님 곁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큰 스님이 열반에 드시자 스님도 불광사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큰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모든 것을 지암스님에게 남기겠다는 말씀과 유언장이 있었지만 지암스님은 그것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암스님은 불광사의 앞날을 생각하며 불광사의 발전을 위해 사형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걸망하나만 메고 선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선방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올림픽 공원․ 경기장에서 1만여 명이 모인가운데 창립25주년기념법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이제는 됐다!’ 라는 안심과 함께 홀가분하게 선방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큰 스님의 반야법을 몰랐다면 그렇게 쉽게 불광사를 떠나오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그것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도리라 하셨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같이 살리는 도리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보현사로 돌아왔는데 큰 스님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 없었다면 또 이렇게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기도 때마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하면서 큰 스님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암스님의 염송소리가 우주를 돌고 돌아서 큰 스님의 귓가에 들릴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바쳐 정성을 쏟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광덕 스님의 제자임에 자부심을 가지자고 하셨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회주 스님을 잘 받들어서 불광의 뿌리 깊은 불자가 되어주길 마지막으로 당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