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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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0.06.20 조회21,164회 댓글0건본문
2010년 6월 2일 지방자치선거가 예상 밖의 한나라당 참패로 끝났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던 여당 후보들이 낙선했고, 수도권의 시장, 구청장, 의회 의원도 거의 야당 후보들이 차지했다. 이 예상 밖의 결과를 언론인들은 ‘침묵의 나선이론’(사람들은 자기 의견이 소수라고 생각하면 입을 다문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안함 의제가 너무 크게 정치화 됐고 대통령의 독선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침묵하게 했다 한다. 선거 직전 여론 조사 응답률이 20%정도였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여론의 억압적 분위기속에서 정부는 국민들 생각에 귀 기울이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증거다.
민주사회에서 억압과 권력의 독선은 소통을 어렵게 하고 그 부작용은 크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에게 있었던 일이다. 대학을 다니던 딸이 취업을 걱정해, 학과를 바꿔 사이버 대학에 편입했다. 그런데 가족 누구도 그 같은 딸의 상황을 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고 못마땅해 했다. 딸은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다녔는데 취직도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마시는 정도는 심해져 페트병 소주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시고 있었다. 딸이 알콜중독증세를 보일 때까지 부모는 물을 마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대화의 단절, 무관심에 의해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심각했다. 이제 그들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얘기들을 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정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도 개인의 입장과 여건에 따라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은 목적으로 모인 단체라 해도 그 구성원들의 생각은 통일되기 어렵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듯이, 개인의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소통은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자기 생각을 놓지 못한다. 거기다 이해(利害)가 개입되면 갈등국면은 더욱 첨예하다. 때문에 단 둘이 같은 일을 도모한다 해도 생각의 조율,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둘 이상이 되면 리더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설득과 포용, 그리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으로 의견을 조율해 내는 리더는 소통하는 조직의 구심점이다. 소통은 조직의 생명력이고, 소통하는 가운데 가정은 화목하고 공동체는 화합하며, 사회는 발전한다.
어느 사회든 빈부, 노소, 종교 등 다양한 층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그들 나름의 생각이나 요구들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데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외가 형성된다. 용산참사가 떠오른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답답한 사정을 얘기하고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목숨까지 빼앗아 갔다.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아픈 기억은 많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같은 일은 벌어지고 있다. 절대빈곤층, 저소득층, 노동자, 농민 등 그리고 다문화가정 이주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지금 그들이 안고 있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수혜(受惠)보다는 그들의 얘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세상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귀 기울이는 일은 관심이며 존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쟁보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세상, 밀어붙이기식보다 다소 더디더라도 함께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는... 서로가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그런 세상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