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하 광덕 대종사 13주기 추모법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2.02.05 조회26,676회 댓글0건본문
법주(광덕)스님 13주기 추모법회가 2월10일 보광당에서 있었습니다.
거룩하고도 이 뜻 깊은 행사에 많은 사부대중이 참석해여
법주스님의 높은 불광의 순수 불교의 뜻을 기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 불광의 중창불사가 원만 성취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인사말씀을 해주신 지정스님의께서는 스님의 출가시절을 돌이켜보며 법주스님께 느꼈던
교훈을 두 가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지정스님께서는 당신이 재주가 없다고 하셨지만
참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교훈...하나는 사형이었던 능가스님과의 예를 드시며 웃어른을 잘 섬기셨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남을 비방하는 법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법주스님께서는 지정스님에게 순수하고 소박하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지정스님의 오늘 이야기에서 그런 모습이 듬뿍 느껴지는 훈훈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인사말씀은 법주스님을 다시 한 번 기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불사를 앞두고 있는 불광을 위하는 말씀이시기도 하셨습니다.
“회주스님이 대작불사 중창불사를 벌여 오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부처님일이니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만 성취되기를 기원 드립니다. 외형적으로 불광이 발전되기 위해 꼭 불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불광에 살아있는 정신이 퇴색되지 않고 큰스님의 순수 마하반야바라밀의 불교 정신이
놓치지 않고 발전시켜 생명력 있는 큰스님의 사상을 맛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법회장님의 추모사와 회주스님의 봉행사를 이어 영상을 통해
법주스님의 생전 모습을 생생한 음성으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가진 한계의 벽을 넘어서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내어...
위대한 불성의 주인으로 높은 긍지를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보다도 불광연구원에서 연구하여 학술연찬회에서
발표되었던 내용들을 정리한 전법학 연구 학술지를 법주스님의 영단에 봉정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회주스님께서는 법회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시며 보살님들이 큰 스님 영전에 질서있게
절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시는 안내자까지 되어주셨습니다.^^
몹시 추운 날씨였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꽃을 나누어주시는 현관 안내자 봉사님들과
또 맛있게 다과를 준비해주시며 오늘의 행사에 훈훈한 향기를 불어넣어준 다도 부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그리고 멀리서 올라오신 문도스님들께서도 늘 평안하시기를 기원 드리며
우리의 새 법당에서도 법주스님의 큰 법음이 어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봅니다.
또 스님의 말씀처럼 내용이 더 알찬 불광이 될 수 있도록
보현행자의 삶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전법도량을 창간해 주신 법주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거듭 올리며
저희 또한 이 훌륭한 불사에 참여 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올 한 해에도
즐겁게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_()()()_
"보현행원으로~중창불사로~보리이루리~"
금화 광덕 대종사 행장
현대 한국불교사에 빛나는 공헌을 하시고 종단과 세간의 등불이셨던 금하 광덕(金河 光德) 스님은 1927년 4월 4일 (음 3월 3일)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리에서 아버지(본관 제주) 高準學(고준학)씨와 어머니 金東娘(김동낭)씨 사이에서 2남 3녀중 넷째로 태어나셨습니다. 본명은 秉完(병완).
1950년 부산 범어사 동산 대선사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관, 세계관의 일대 전환을 맞이하여 범어사 선방(청풍당), 관음전, 지장전, 미륵암, 금강암, 송도, 죽도, 삼천포, 함안 장춘사 등에서 발분 정진하셨으며, 1952년 동산 대종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56년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셨습니다.
소천 대선사의 覺運動과 그 사상에 깊이 계합한 바 ‘금강경독송구국원력대’에 참여 전국 순회를 하기도 하였으며 爲法忘軀로 금정사에서 용맹정진 하시던 1954년 봄 어느 날 般若開眼하셨습니다.
당시 정황을 스님께서는 “금정사 마루턱에 앉아서 앞산을 건너다보는데 문득 한 경계가 열려 대경(對境)이 모두 달라졌으며, 그때 무척 기뻤고 한없는 감흥에 빠져들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으셨습니다. 이후 반야 대지혜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절대 긍정의 반야바라밀 신앙을 확립하시고 평생 동안 온몸을 바쳐 마하반야바라밀 전법운동에 전념하셨습니다.
1960년 범어사 보살계 때(음3.15) 동산 대종사를 恩師와 戒師로 수계를 하신 스님은 종단활동을 통한 불교중흥과 정법포교를 위해 헌신, 그 빛과 덕으로 한국불교사의 신새벽을 여셨습니다.
1974년 9월 불광회를 창립하시어 같은 해 11월 월간 불광을 창간하셨으며, 1975년 불광법회를 창건하셨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불광사․불광법회를 창립하고 불교의식을 한글화하고, 매주 법회를 함으로써 일반인은 물론 어린이․학생․청년층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화 할 수 있게 하였고, 음성포교를 위해 불교 합창단을 창설 찬불가 보급은 물론 찬불가를 불교의식의 일부로 만들어 여법한 법회를 이끄셨습니다.
아울러 한국불교역사상 최초로 창작 불교 국악 교성곡 보현행원송과 부모은중송을 만들어 세종문화 회관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여 전 국민이 공연을 참관하게 하였으며, 마하반야의 노래, 님의 숨결, 연꽃 피는 날 등 주옥같은 찬불가를 작사하시어 보급하셨습니다.
매월 월간 불광을 발행(2012년 2월 현재 통권 448호)하며 문서포교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스님은 금강경, 보현행원품, 지장경, 관음경 등 많은 경을 한글로 번역하시고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 삶의 빛을 찾아, 메아리 없는 골짜기,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 등의 저술과 육조단경, 선관책진 등 참선 지침서도 다수 번역, 20여 종의 불서를 출간하셨습니다.
반야법문을 통해, 월간 불광 발행과 수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각종 교육과 봉사, 전법활동을 통해 모든 사람은 본래 부처님,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하는 찬란한 대긍정의 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신 스님은 법랍 48세, 세수 73세로 1999년 비록 사바 세연을 거두시고 원적 무상삼매에 드셨지만, 찬란한 빛으로 돌아오시어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