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9년 7월 둘째주 일요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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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주 작성일2015.07.14 조회34,684회 댓글0건본문

7월 11일(토)은 백중기도 입재날 이었습니다. 매년 백중기간 동안의 49일이 보살님들이 가장기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한 여름의 무더위도 잊고 기도하실 우리 불광 보살님께 찬탄드립니다.
조상천도의 공덕으로 가정 화평하시고 보리심을 성취하시기를. 그리고 도일스님의 법문대로 공덕을 쌓아 미래를 밝히시기를.
우리 모두 정법호지 발원에 참하여 빛나는 한국불교의 새 길을 닦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금주의 법어 - 공덕은 미래다 (조계총림 송광사 율원장 도일스님)

불교가 미래의 희망인 이유는 팔정도로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다고 여겨진다. 팔정도의 정견은 현상을 바로 보는 것(연기법을 아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진리가 있겠는가?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세계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는 고통이 무엇이며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인생에서 겪어야하는 병고나 가난 혹은 재난을 고통으로 본다. 이러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통이라기보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생노병사를 포함한 사고와 사고는 고통이긴 하지만 진리(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연기법)이다.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고통의 원인은 무지이다. 무지야말로 진정한 고통의 뿌리라는 것이다.

이 무지를 벗어나게 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연기법이며, 세상을 바로 보는 통찰의 기본은 연기라는 법이다. 연기법은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것이 형성되는 것에는 ‘조건’이 존재한다. 조건이야 말로 모든 것이 생겨나게 하거나 소멸되게 하는 이유이다. 이 연기법을 제대로 알고 보는 불자들은 세상의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게 된다.
이처럼 모든 것을 생멸법칙으로 깨치고 이해하게 되면, 탐진치 삼독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오는 고통은 욕심과 성냄으로 비롯된다. 탐욕은 마음을 병들게 하고 화냄은 눈을 멀게 하고 어리석음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탐냄과 화냄 속에 삶은 무너져 내린다. 탐욕과 화냄은 어리석음을 불러 인생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앗아간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긴 역사가 모두 탐진치 삼독의 역사가 아닌가!

삼독을 없애는 방법이 바로 계정혜 삼학이다. 계는 삶의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계로 말미암아 인류가 추구하는 복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정은 안정된 힘이다. 안정은 곧 끊임없이 바른 정진으로부터 온다.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만큼 노력해 가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지혜가 완성된다. 올바른 계와 정에서 나온 지혜는 인류의 바른 등불이 된다.
계정혜 삼학이 불자들이 쌓아야 하는 공이다. 공이란 노력이 쌓인 것을 뜻하고, 덕이란 널리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이 쌓여서 이웃이나 나라에 베풀 수 있을 때 우리는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수있다.

우리에게 있어 공덕이란 현재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행복의 시작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 불자 모두가 실행해야 할 덕목은 자신으로부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다음과 같은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연기법으로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1. 사람에게 정성을 다한다.
내 옆사람이 관세음보살이고 부처일 수 있다. 모든 존재에 정성을 다하자.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면 어려운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2. 일에 정성을 다한다.
고귀한 일 하찮은 일은 없다. 내가 정성을 다하는 일이 최고의 일이다.
3. 물건에 정성을 다한다.
현재 있는 것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라.
더 좋은 것도 있지만 현재 내 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불교의 정신과 이 세가지를 밑바탕으로 삼아 걸어갈 때 삶이 헛되지 않을 수 있다. 인신난덕 불법반덕(사람몸 받기 어렵고 불법만나기 어렵다)인데 우리는 이미 사람 몸 받고 불법을 만났으니 더 정진하여 매진하자.
이러한 공이 모여 덕으로 베풀어질 때, 우리는 현재의 행복과 함께 미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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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천국에 갈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믿음이 지극하고 늘 항상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불교도 죽기 직전에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갈수 있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 열 번을 부를 수 있는냐가 문제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의식이 의미해지는 상태에서 업장이 드러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평소 항상 염불을 하여 평소 마음이 정토를 향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즉 증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덕이 희망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고 말한다. 공은 매일 일과 처럼 쌓아가는 것이고 덕은 그 공을 펴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불교용어로는 증진력이다.
증진력은 매일 실천하고 미리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증진력에 관한 것으로 예를 들면, 최근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를 위해 일본은 수 십년 전부터 세미나 포럼 등으로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치밀하게 준비했고,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여건을 고려해 준비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하고, 오직 실력과 돈에 머리를 숙이는 냉정한 세계이다. IT시대로 대변되는 변화무쌍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속을 꿰뚫어 보는 안목(지혜)이 필요하다. 지혜가 갖추어지면 증진력이 생긴다.
증진력은 공덕과 같은 말이다. 증진력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우리나라는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것은 단단한 반석이 없어서이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
공덕을 쌓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는데 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누어 주고 함께하는 행복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믿음과 화합으로 이루어진 행복이야말로 더욱 가치있고 소중하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사회는 인류가 갈망하는 생존형태이다. 든든한 정부, 청렴한 공직자, 거짓없는 상인, 믿을 수 있는 친구, 마음을 줄 수 있는 이웃 등 사회적으로 신뢰가 굳건할 때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금주의 다짐
중생들은 아(我)에 대한 집착 때문에 끊없이 윤회하며 세상고통을 받는다 했다. 힘써 탐진치를 버리고 상(相)을 여의자. 이 몸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온천지가 법서왕명이거늘 어디에 증애심을 일으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