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9년 9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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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희 작성일2015.09.04 조회34,685회 댓글0건본문
불기 2559년 9월 호법 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법문요약)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토를 키우는 것이고, 우리의 역사를 키워가는 소중한 사상입니다. 불교가 단순하게 내 이익을 준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교자체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동일생명이라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습니다. 일체 동식물, 일체 자연현상과 더불어 동일생명이라 하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동일생명이라는 그 기반 속에서 우리들이 생각을 하고, 일을 할 때, 바른 불교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광의 대학입시 발원문은 부처님의 크신 은혜 속에서 내 아들 딸들이 이렇게 생을 받았다. 이 아이들은 국토와 민족과 역사를 위해서 할 일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원활하게 잘 펼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십사 그리고 그것은 이미 부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 대입수험생을 향한 바른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야심경에는 시제법공상 일체의 모든 것은 공했다. 공했다는 말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삼라만상 현상적인 모든 것을 초월했다는 말입니다. 그 현상적인 것을 초월한 그 세계를 인식한 사람은 참 드뭅니다. 그래서 저 너머에 있는 우리 본래의 자리 부처님을 볼려고 우리들은 참선을 하고 반야바라밀 염송을 하고 수행을 통해서 반야바라밀 진리 바로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라고 하는 자체가 반야바라밀속에 있다. 부처님의 위신력 속에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리자체가 바로 반야바라밀이요 그 반야바라밀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반야바라밀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우리 마음이 부처인데 이 부처님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여래장이라고 합니다. 나의 본성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그것을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쓰는 것이 불자의 삶입니다. 내 속에 있는 신비로운 힘을 꺼내어 쓰는 것은 내 노력입니다. 부처인 내 속에는 반야바라밀의 진리공덕이 가득 차 있다. 이 진리를 내어 쓰자고 노력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불교의 기도는 비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 부처님의 무한자비를 꺼내 쓸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기도입니다. 내속에 있는 무한공덕을 자꾸 잊어버리고 망념이 들어온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무한공덕을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이다. 반야바라밀염송을 통해서 내 생각이 벗어나는 것을 막고 마음을 자꾸 모으는 것입니다.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절해야합니다. 망상을 막고 나에게는 한량없는 공덕과 위신력이 꽉 차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을 하고 이것을 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법공상이란 모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없다는 것이 텅 비어 없다는 것이 아니고 그기에는 한량없는 공덕이 꽉 차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삼천대천세계 허공에는 많은 것이 꽉 차 있습니다. 텅 빈 그 허공이 우리들을 비롯해서 모든 삼라만상을 다 머금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하다고 합니다. 그 공속에 즉 내 마음속에는 반야바라밀인 내 부처속에는 불생불멸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내 본성 속에는 본래부터 한 번도 없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불구부정 한없는 청정이 있다. 가끔 짜증나고 미운생각도 들지만 우리 속에는 절대의 청정자리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내어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자리 반야바라밀 자리는 부증불감입니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그것은 완전구족하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그런 것이 갖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부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재로 내 본성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보기에 이 사바세계는 참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유마경 불국품에 이 지구라는 사바세계가 최승장엄입니다. 가장 수승한 완전무결한 세계라고 나옵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세계는 눈을 뜨고 보면 한량없는 청정, 한량없는 공덕, 무한의 위신력 이것이 가득찬 세계입니다. 이것을 보자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 말은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이 세상은 신기(神器) 이 세상 자체는 신비로운 그릇과 같아서 고치고 바꿀 필요가 없다고 나옵니다.
본래 청정한 완벽한 세계에 우리가 눈을 떠야합니다.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도 괜찮지만 반야경에서는 내 생명이 반야바라밀이다. 그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므로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한량없는 공덕세계라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신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거나, 재산이 없다고 해서 못 보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에 따라 그 세계는 나에게 옵니다.
조사스님께서 말씀하신 일일시호일 하루하루가 즐거운 날 입니다. 그 경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경계입니다. 이 본래의 경계를 우리들이 눈을 감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라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6년이란 긴 난행 고행을 다 겪고 난 후에 이 세계가 완전무결한 신기에 가까운 그런 세계다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고, 이것을 듣고 우리들은 정진해 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내 속에는 한량없는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 공덕력이 꽉 차 있다는 그기에 눈을 떴을 때 우리들은 바른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 가장 좋은 수행법이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염송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샴보리이고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마하반야바라밀 완벽한 그 자리에 가기위한 노력입니다. 그래서 이 노력을 함으로써 이 세상에 잘 살 수 있는 깃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은 바로 진리인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바라밀 진리인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이루어진 것을 끄집어내어 쓰는 것이 바로 나의 노력입니다. 얼마나 잘 끄집어내어 쓰느냐하는 것은 얼마나 진실되게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것 보다는 보는 것이 휠씬 낫지만,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세계구나 이것을 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만약 못 보더라도 100% 믿자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호법법회를 하고 일요법회를 하는 것은 법회가 끝나면 잊어버려요. 그래서 끊임없이 법회에 오는 겁니다.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불붙은 집의 아들과 그 아버지
법화경 수기품 합송 -호법월보 참조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은 불난집(화택火宅)과 같다. 빨리 나오너라 그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큰 자비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실상은 보장엄의 가장 완벽한 세계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보장엄의 수승한 세계라는 것은 깨달음 자체의 세계이고 깨닫지 못한 미한 세계에서는 고통스러운 고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를 우리들은 살고 있고 그 세계를 벗어나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내가 사는 세계가 위험한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마음을 내는 겁니다.
장자 집에 왜 문이 하나인가 그것은 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통 속에 있는데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내가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성불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확연히 보는 것 그것을 이름해서 견성성불 이라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그런데 성불이라는 것은 기실은 우리 모두가 성불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눈을 못 뜨고 있어요. 내가 부처인줄을 몰라 내가 부처인줄 알면 그것이 살길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견성이 목적이지만 결코 견성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이치를 떠나서 우리가 원하는 온갖 것을 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 준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모든 것을 부처님께서는 다 주는 겁니다. 그런데 빌어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부증불감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 완전원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철저히 믿고 있을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옵니다. 물론 여기에 노력이 필요하지요. 내가 병이 들었다하면 그 병을 낫게 할 노력을 합니다. 노력을 하면 가능해요. 왜! 나는 병이 없는 본래 완벽한 몸을 타고 났으니까.
우리가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모든 동식물이 사는 목적이 하나 있습니다. 그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을 어떻게 내 것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이 내 생명이 어떠한 생명인가 하는 것을 철저하게 알고 느끼고 그것을 보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통해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설명한 것이
*법당의 메아리*
반야바라밀 진리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소망 합송---호법월보 참조
반야바라밀을 염송함에 의해서 내가 원하는 모든 소망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주어져 있다. 새들이 동물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것은 그 동물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들이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이 같이 태어난 것이다. 진리의 힘이라는 것은 그 동물들이 태어날 때 그 동물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여건을 동시에 만든 것이다. 그게 부처님의 힘이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체 여건들을 부처님께서 이미 주어 놓았어요. 그런데 그것을 우리들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하면 찾는 방법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분명히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태어날 때 내가 필요한 모든 자원이나 건강이나 이런 것을 갖고 태어난 겁니다. 이것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바라밀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찾는 것은 무어냐? 그것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그 공덕은 우리 생활위에 이미 주어져 있으니까 그 무한공덕은 우리 생활위에 도도하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바라밀 진리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모든 소망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 믿음을 굳건히 하는가 하는 것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얼마나 열심히 끊임없이 하는가에 달려있다. 아무쪼록 반야바라밀 확신을 갖고 반야바라밀을 많이 염송하고 수행해서 우리 형제들의 삶이 전부 다 행복해지고 기뻐지고 보람이 있는 그런 날들이 되어 주십사 하고 바라면서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형제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